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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일상 및 기타

할아버지의 전쟁

by j제이디 2020. 6. 29.

 

온 식구가 모여 긴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면, 할아버지는 늘 식탁의 제일 끝 상석에 앉으셨다.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그 자리에는 늘 소주병이 있었고, 어떤 날은 밥보다 술잔을 더 많이 기울이기도 하셨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상을 물리고 벽에 기댄 채 쭈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전쟁 이야기를 넋두리처럼 늘어놓으셨다.
 
“선임 하사가 지시하고… 여기 저기 뛰어 다니고… 총알이 날아다니고...”
 
나는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어제도 그제도 들었던 그 이야기를 또 들었다.
그러면 숙모는 나에게 ‘얼른 방으로 들어가라’고 미련하다는 듯이 핀잔을 줬다.
 
“제주도에 군사학교로 가서… 하사관 훈련을… 사람이 하나둘씩 죽어가고...”
 
매일 똑같은 무용담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어졌고, 나는 한 번씩 눈치를 보며 저린 다리를 풀었다 오므렸다 반복했다.
알아 듣는 얘기보다 못 알아 듣는 얘기가 더 많았지만 나는 미련하게도 늘 같은 얘기, 그 끝나지 않는 전쟁 얘기를 들었다.
 

  
육군상병 이재구.
1953년 6.25 전쟁 중 전상.
 
6.25 전쟁이 발발한 1950년, 할아버지는 약관 20살의 나이였다.
그리고 묘비에 새겨진 전상을 입은 1953년에도 불과 23살, 너무나 어린 나이였다.
 
그렇게 세월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할아버지는 다리에 박혀버린 총알을 잊은 채 살았다.
그래야 전쟁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전쟁이 끝나고도 수십 년이 지나서야 할아버지는 그 상처와 마주하게 되었고, 집 한켠엔 ‘국가유공자의집’ 명패가 달렸다.
 
훈장 같았던 명패를 보고나서야 술이 아니면 하루도 버틸 수 없었던 삶의 무게를 우리도 조금은 느끼기 시작했다.
 

  
나도 20살에 군대에 갔고, 22살에 전역, 23살에는 대학교에 복학했다.
군대 가기 전에 이제야 어른이 된다고 말하시던 할아버지는 내가 전역할 때쯤에는 건강이 나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치매가 찾아왔다.
 
전쟁 같았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도 할아버지는 이따금씩 군대 얘기를 했다.
이제는 내가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고, 더 오래 들어드릴 수 있는데,
그렇게 핏대 세워가며 늘어놓으시던 전쟁 얘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게 마지막이란 걸 알았고
병문안을 마치고 채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
 
할아버지의 다리에서 수십 년이 지난 총알을 빼내던 날
전쟁의 나쁜 기억도 함께 지워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할아버지에게 전쟁은 평생 끝나지 않았고, 죽어서야 삶 같은 전쟁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