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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사회와 문화

시국선언

by j제이디 2017. 8. 2.

* 이 글은 2016년 10월 29일 홈페이지에 썼던 것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하루가 멀다 하고 시시각각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는 것은 통쾌했다.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속보로 권력의 비리가 파헤쳐지는 모습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우리가 감히 가까이서 볼 수 없었던 권력자들의 인면수심을 생생히 마주하는 일은 통쾌함을 넘어 짜릿한 자극을 주었다. 그런데 어느쯤에서 끝났어야할 뉴스는 끝나지 않고 권력, 재벌, 종교를 막론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란 본래 부패하고 그들의 권리는 남용하기 쉬워 국정이 권력자들의 양심에 따라 운영될 것을 순순하게 믿은 것은 아니지만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자니 더는 통쾌하지도 짜릿하지도 않다. 그저 허무하고 허탈하다. 세월이 하수상하다.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제인물로 알려진 성이성은 수의어사 시절 암행하여 한 고을에 이르렀다. 술쟁반이 어지러울 정도로 큰 연회가 벌어진 자리에서 걸인의 모습으로 참석한 성이성에게 술에 취한 사또들이 시를 짓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든지 그렇지 못한다면 자리를 떠나라고 했다. 이제 성이성이 운을 청했고 사또들은 ‘기름 고(膏)’와 ‘높을 고(高)’를 운으로 내렸다. 여기서 바로 그 시가 탄생한다.


금준미주천인혈(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만성고(玉盤佳肴萬姓膏)

촉루낙시민루락(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원성고(歌聲高處怨聲高)


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많은 사람의 피요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도 떨어지고

노랫소리 드높은 곳에 백성들 원성도 높네


 이 시는 성이성이 처음 쓴 것은 아니다. 이전에 조경남 장군의 기록이 있고 이 기록은 명나라 장수가 조선에 와서 정치가 혼란한 것을 보고 읊었다는 시였다.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인 1622년의 기록이다. 그때도 아주 작은 권력이라도 있는 자들은 백성들의 피와 기름을 짜내 술을 마시고 안주를 즐겼다. 그런데 500년이 지난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차라리 이것이 권력비리에 그쳤다면 이다지도 슬프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화 <밀정>에서 이정출(송강호)은 “너는 조선이 독립할 것 같냐?”하고 묻는다. 그리고 영화 <암살>에서 염석진(이정재)은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답한다. 엄혹했던 일제가 영원할 것 같이 느껴진 것은 일제에 부역한 친일파들 때문이었다. 자기 것도 아니면서 나라를 팔아먹고 동족들을 잔혹하게 탄압하였다. 국운이야 어찌 되든지 백성들이야 어찌 살든지 일제에 머리를 조아리면서 제 한목숨 건사한 친일파들이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일제가 끝날 줄 몰랐을 것이다. 아니, 그들은 일제가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하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달도 차면 기울고 한 번 성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 그런데 친일파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권력자들 재벌가들 정치인들과 이들에 부역한 자들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하고, 열흘 붉은 꽃이 없다


 우리 인생이 이토록 허무한 것인데 하물며 권력인들 어떠할까. 신약성경 에베소서에서는 사탄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고 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은 인간을 미혹하고 실패와 절망으로 넘어뜨리는 일을 한다. 지금 이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거대 자본을 가진 재벌들은 더 큰 부의 축적을 위해서라면 노동자들의 목숨쯤은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들의 돈이 정치권력을 잡은 자들과 결탁하고 언론은 여기에 동조하여 침묵하고 종교는 이들을 축복하고 있다. 영화로도 만들 수 없을 만큼 권력은 부패하고 양심은 타락한 참담한 상황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는 정의가 승리한다. 그런데 정의는 영화에서만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오늘, 여기에서도 정의가 승리해야 한다. 승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달콤한 열매가 아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패배감 속에서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허무함 속에서도 우리는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나치에 침묵한 프랑스 기자들의 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분연하게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3·1운동을 기억하며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았고 4.19 혁명과 1987년의 역사를 이뤄냈다. 그리고 그 역사는 1919년에, 1960년에, 1987년에서 끝난 것이 아니고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역사의 진보를 위해 박근혜 정권에 퇴진을 명한다.


2016년 10월 29일

침묵하지 않는 나의 작은 용기가 전염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