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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사회와 문화

나는 한동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by j제이디 2014. 8. 14.

오늘 아침 아픈 소식을 접했습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씩 정리를 해보고 싶습니다.

 

 

1. 사건의 개요

 

더 스모킹 건 닷컴(www.thesmokinggun.com)에서

오늘(13) 최초로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사건은 10일 오후 530분 일본 도쿄에서 출발

뉴저지의 뉴왁공항으로 가던 비행기에서 벌어졌습니다.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의 방문연구원인 이교수가

옆자리 여성 승객의 신체를 손으로 더듬었고

이 교수는 착륙 직후 FBI에 체포되었습니다.

 

목을 만지고 셔츠 안으로 손을 넣으려 했다.”

이 교수는 조사과정에서 성추행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성추행 혐의가 인정되면 2년 이하의 징역과

25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고 방문연구원 자격도 박탈당하게 됩니다.

 

최초 보도한 더 스모킹 건 닷컴

이교수의 이름을 이은종 교수로 밝히고

기사에 사진도 함께 게재했지만

무죄를 추정하며 논조를 조심스럽게 작성했습니다.

 

 

2. 사건의 전파

 

원문을 전하는 국내 언론의 보도는 안타까운 점이 많습니다.

다수의 언론이 한동대와 이교수의 실명을 거론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교수의 사진까지 함께 게재했습니다.

이 뉴스는 오늘 하루 온라인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현지 보도에서 실명과 사진이 거론되어

국내 언론도 이를 받아서 사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현지 보도의 논조와 달리

기사의 제목과 내용이 상당히 노골적입니다.

 

오늘 하루 사람들의 입에 수없이 오르내렸을 뉴스지만

지금 이 시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몇 가지 단어만 남습니다.

기독교, 한동대, 교수, 성추행, 25

이쯤 되면 이미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게 돼버리고 맙니다.

 

선동가로 알려진 괴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인터넷 기사와 커뮤니티들의 반응은 참담합니다.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한동대학교 교수의 성추행은

기독교와 한동대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고

주변의 반응도 조금 덜할 뿐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과 사건의 반응에 대한

한동 공동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부끄럽다, 쪽팔린다, 참담하다.”

나는 한동 공동체 안의 이 반응들이 참 부끄럽습니다.

 

 

3. 부끄러운 마음

 

다수의 한동 구성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한동이라는 이름이 갖는 이미지가 더렵혀지지는 않을지

이 불똥이 나에게 튀지는 않을지 경계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 대해 침묵하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또 다수의 한동 구성원들은 이교수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동대 출신 혹은 한동대 학생이라는 이름표에 먹칠을 한

이교수를 비난하며 이 사건에서 빠져나가려 합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하여 침묵하고

무엇 때문에 부끄럽고 왜 이교수를 비난하고 있습니까.

 

사건의 추이로 보면 고의성과 정황증거, 진술이 확보되었습니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대로 확정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른 척 그를 욕하기만 하면 될까요?

 

형이 확정된다면 미국 국적 기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에

2년 이하의 징역과 25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을 것입니다.

또 학교 교칙에 따라 코넬과 한동에서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미 그를 마녀사냥하고 돌로 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해결될 문제라면 백번이고 타당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해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그의 죄가 가볍다거나 무조건 용서하자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다수의 한동 구성원들은 한동이라는 이름이 더렵혀질까 두렵습니다.

한동이라는 그 이름이 무엇이 그리 대단하고 자랑스럽습니까.

이 사건으로 우리는 왜 분열하고 비난하기에 열을 냅니까.

우리는 판단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했지 한동을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

 

우리 이미지가 나빠질까 두렵다면

그것은 진정 한동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실추될까 두렵다면

그것이 공동체를 위한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까.

 

이번 사건은 분명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한동 공동체에 분명하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4. 한동 공동체

 

스무 살, 처음 한동을 만난 때가 생각납니다.

그땐 한동이 천국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동에도 범죄가 있고 시기와 질투와 다툼이 있고

정죄하고 비난하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천국이라는 환상이 깨어졌던 첫 번째 순간

너무나 큰 좌절을 겪게 되었습니다.

 

한동은 세상이지 천국이 아닙니다.

여기서 한동 공동체를 생각해 봅니다.

공동체는 단순히 사람이 모인 것만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에는 비전이 있고 구성원들은 같은 비전을 공유합니다.

한동 공동체의 비전은 공동체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고 세상에 가득해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낮아지고 깨어질 수 있습니다.

 

지옥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는 것은 당연히 어렵습니다.

수많은 도전과 좌절,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오랜 시간에 거쳐 마음을 모으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분열하기를 좋아하지만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이번 사건과 같은 큰 아픔도 앞으로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역사는 앞으로도 되풀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분열하고 비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까요.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완성되는 것일까요.

 

내가 작은 예수가 되고 이 땅이 천국이 되는 것

너무나 달콤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너무나 쓴 이야기입니다.

뱃속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뛰지 않는 것을 탓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혹독한 연단의 과정과 쓴 인내 없이 왜 단 열매만 가지려 합니까.

 

나는 한동 공동체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내가 작은 예수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이번 사건이 분명히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단지 이 사건이 부끄럽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징계와 비난은 당연히 그가 감당해야 하며

우리도 함께 아파하며 회개하고 무릎으로 나가야 합니다.

 

당신은 한동이라는 그 이름에 자부심을 느낍니까.

당신은 한동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한동 공동체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