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기록/지희네 이야기19 덕호 삼촌 부끄럽지만 덕호 삼촌은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입에 문 담뱃불을 채 끄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는 멋쩍게 웃는 누레진 이빨이, 종일 이집 저집 논일이고 밭일이고 다 내일이 되어버린 쩍쩍 갈라진 손바닥 시꺼먼 손톱이, 시원하게 한번 말하지 못하고 더듬더듬 맞지 않는 말들만 겨우 내뱉는 말이 부끄러웠다. 형님들한테 구박받고 형수들에게 핀잔 듣고 때로 조카들에게도 무시당했던 덕호 삼촌. 그런데 대호 삼촌, 경호 삼촌, 다른 삼촌들에게는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았는데, 덕호 삼촌에게는 왜 늘 이름을 넣어 덕호 삼촌, 덕호 삼촌 불렀을까. 아버지 묘지를 이장하던 날 눈치 없이 대낮부터 취해버린 덕호 삼촌은 다짜고짜 묘비석에 날짜가 잘못되었다고 소리 높였다. “양력으로 쓰니까 당연히 이 날이 맞는 거지”라며 .. 2019. 8. 26. 사랑하는 지희에게 2014년 9월 1일 우리는 만났고 2015년 10월 17일 우리는 결혼했지. 오늘이 2018년 10월 17일, 우리가 결혼한 지도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우리가 함께했던 어떤 시간보다 지난 1년이 우리에게 힘든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토록 간절히 조금만 더 살아계시길 바랬던 장인어른은 끝내 우리 곁을 떠났고, 그토록 보고 싶었던 30년 전에 내 곁을 떠났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해야 했던 지난 1년. 슬픔은 왜 또 다른 슬픔과 함께 오는지 아픔은 왜 또 다른 아픔으로 잊어야 하는지. 그래도 내가 1년을 잘 버텨온 건, 그래도 우리가 1년을 잘 살아온 건내 곁에 당신이, 당신 곁에 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기적처럼 장인어른이 건강해지길 바랬고 기적처럼 아버지가 살아나길 바랬던 시간은우리가 함께한 .. 2018. 10. 17. 아버지 묘지를 이장하며 아버지 묘지를 이장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내게는 그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고 사진이 없었다면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묘지를 이장하며 세운 묘비를 보니 1991년, 내가 6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6살이면 기억이 날법도 한데 그날의 사고가 어렸던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것일까, 내 기억도 그날의 사고와 함께 모두 지워졌다. 살면서 한 번도 원망해본 적은 없다. 다만 때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내게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까, 불쌍한 우리 엄마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보긴 한다. 나에겐 처음부터 없었던 당신이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현듯 생각이 난.. 2018. 5. 12. 남쪽바다가 부른다 - 둘째날 남해 여행 '남쪽바다가 부른다' 첫째날 부산여행에 이어 둘째날 남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첫째날 부산여행 보기 - [링크] 둘째날은 서울로 복귀해서 차량을 반납해야 되기 때문에 일정이 촉박했는데요, 부산에서 남해의 독일 마을, 돌창고 프로젝트, 양모리학교를 돌아봤습니다. 사진으로 그 현장을 살펴보겠습니다. 부산 숙소에서 2시간을 달려 남해의 첫 여행지로 도착한 곳은 독일마을이었습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 분들이 귀향해 만든 독일마을의 주소는 '독일로 89-7' 이었네요. 독일 마을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도착해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남해파독전시관이었습니다. 이곳은 1인당 1천원의 입장료를 받았습니다. "글릭 아우프"살아서 돌아오라는 그 무서운 인사가파독 광부들의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파독 광부 .. 2017. 12. 17. 남쪽바다가 부른다 - 첫째날 부산 여행 지난 11월 말, 우연히 '남쪽바다가 부른다'를 알게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내 여행 활성화 프로젝트인 '대한민국 테마 여행 10선'의 하나로 부산, 거제, 통영, 남해를 여행하는 '남쪽바다가 부른다'는 사연 추첨을 통해 참가자를 정하는 이벤트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이벤트는 도대체 누가 당첨되나 의심했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운이 좋게도 사연이 선정되어 아내와 함께 부산과 남해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무료 렌터카와 10만원 상당의 체험비를 지원받게되었습니다^^ 아침 9시 30분쯤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첫 여행지인 동백섬에 도착하니 무려 5시가 다되었습니다.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해운대 동백섬이라 그런지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습니.. 2017. 12. 15. 우리의 온도 우리의 온도 우리가 결혼한 것이 벌써 2년 전함께 울고 웃으며 쌓은 이야기가 저 높은 하늘만큼함께 살고 사랑한 시간이 깊어진 가을만큼 때로 불같이 뜨겁고 때로 물같이 차갑던 우리가 이제는서로를 밀어낼 만큼 뜨겁지 않은 온기를 내며서로가 돌아설 만큼 차갑지 않은 온도를 내는보듬으며 감싸안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음에 감사를 나의 날카로운 마음이 당신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지나의 표현못한 무심함이 당신을 실망시키지 않았는지그럼에도 한결같이 나를 사랑한 당신에게 사랑을 조금더 둥글고 조금더 사랑스러운 당신의 남편이길 바라며 - 2017년 10월 17일 2017. 10. 29.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집 나는 아주 큰 과수원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개나 소 같은 가축들도 있었고 과수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몇 칸의 계단을 올라야 했고 집 앞으로는 작은 강이 흐르고 있었고 집에는 아버지도 있었다고 했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집은 참 따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린 딸과 더 어린 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던 엄마는 이사를 결심했다. 그 큰 과수원을 혼자서 가꿀 수는 없지 않았던가. 내가 태어난 집에서 불과 1킬로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집으로 이사했고 우리를 키우기 위해 엄마는 지척에 초등학교가 있는 새로운 집에서 작은 문방구를 시작했다. 문방구, 부엌, 방 한 칸에 작은 뒷마당이 있는 시골집. 엄마는 지금도 여기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쭉 같은 모양.. 2017. 8. 26. 사랑하는 지희에게 * 이 글은 2017년 6월 16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우리가 결혼한지도 벌써 3년째, 함께하는 당신의 생일이 이젠 당연한 일이 되었네. 문득 작년 당신의 생일이 생각이나. 우리 결혼하고 함께 맞는 당신의 첫번째 생일이었지만 부끄러운 내 손에는 작은 엽서 한장만이 들려 있었지. 좋은 일 한다고 늘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정작 당신에게는 작은 선물하나 챙겨주지 못했었지. 그런데도 당신은 그 짧은 엽서 한장에 진심으로 기뻐했고 감동했었지. 엊그제 같았던 그 일이 벌써 일년 전의 일이라니 새삼스럽게 시간은 참 빠르게도 흘러감을 느껴. 그래도 올해는 당신이 좋아할 작은 선물을 함께 전할 수 있으니 조금이나마 내 맘이 놓이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변해가는 당신의 모습에 늘 고마움을 .. 2017. 8. 2. 장인 당신과 나 자신의 시간 * 이 글은 2017년 2월 2일, 페이스북에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1. 장인과 사위 나는 매주 처갓집에 간다. 아내와 함께 수원의 교회를 가기위한 목적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 햇수로 3년째에 접어들었다. 일요일에 잠깐 들러 인사하고 밥 한 끼를 얻어먹은 때가 많았지만 때로는 토요일에 가서 하루를 자고 오기도 했고 드물게는 금요일 밤에 가서 이틀씩 자고 올 때도 있었다. 처갓집 인사는 자꾸 미루게 된다 하여 예로부터 ‘처가집 세배는 살구꽃 피어서 간다’는 말도 있었지만 오히려 나는 처갓집 인사만 자꾸 드리고 있는 셈이다. 물론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처갓집에 가면 대접을 잘해준다 하여 ‘처갓집에 송곳 차고 간다’는 말이 있듯이 할머니와 장인, 장모의 넘치는 사랑으로 심리적 거리도.. 2017. 8. 2. 우리가 사랑한 시간 [1년] *이 글은 2016년 10월 17일에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오늘은 지희와 결혼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2014년에 만나 2015년에 결혼했습니다. 어렸을 때 막연히 아들딸 둘 낳고 오손도손 잘살 줄 알았던 서른에 결혼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사랑만 가지고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하겠냐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1년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비록 적었으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마종기 시인은 ‘우화의 강’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고 했습니다. 30년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살아온 우리 사이에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 2017. 8. 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