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소한 일상의 기록/지희네 이야기19

아버님 전상서 * 이 글은 2016년 9월 29일에 개인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제가 몇 번째 기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아주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우리 집에서 아버지에 관한 궁금증은 금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저 당신께서 어머니보다 두세 해 먼저 태어나셨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었고, 매년 음력으로 돌아오는 기일은 한 번도 제대로 기억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와의 추억들은 단 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려서 당신을 여읜 까닭이겠으나 머리가 기억할 나이였을 텐데 가슴이 모두 다 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내 삶에서 딱 두 번, 당신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살다가 문득 나는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 2017. 8. 2.
네잎클로버를 찾던 지희에게 지난 6월 30일, 지희는 7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퇴사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마음에 아쉬움이나 허전함은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고 다만 그 마음에 당분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함보다는 출근할 곳이 없다는 불안함이 더 커보였다.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자 우리는 무작정 떠났다. 아침에 집을 나서 양평, 남양주, 가평, 하남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계획 없는 하루를 보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양평 두물머리였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대로 남한강은 유유히 흘렀고 초여름의 끈적거림보다는 늦봄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연잎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너른 잎들 사이로.. 2016. 10. 7.
[보라카이] Day 0, Day 1 - 사전준비부터 숙소 도착까지 지난 3월 12일(토)부터 15일(화)까지 3박 4일 지희와 함께 보라카이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친한 동생 부부와 함께 동반으로 다녀오게 된 3박 4일간의 보라카이 이야기를 하루씩 나누어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첫번째 포스팅은 사전준비부터 첫날 보라카이 숙소 도착까지입니다. 신혼여행 이후 첫 해외여행인 보라카이 여행 시작하겠습니다. ▷ 여행일정 정하기 (항공권, 숙박권 등)국내/해외를 불문하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일정을 정하는 것입니다. 특히 해외 여행은 일정을 정하는 것이 여행의 반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저희는 친한 동생 부부가 지난해 12월에 이미 특가 예매를 마쳐 놓았기 때문에 일정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습니다. 위메프에서 특가로 왕복 항공권과 숙박비를 포함해서 1인당 .. 2016. 3. 30.
[늦은 후기] 2015년 브라운 아이드 소울 일산 콘서트 2015년 크리스마스는 지희와 결혼하고 맞는 첫번째 크리스마스 였습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수원의 교회를 가야하고 26일에는 어머니께서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함께 서울 구경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크리스마스 이브 밤과 크리스마스 당일 오후 시간 뿐이었습니다. 우선 이브 저녁은 스파게티를 해먹기로 하고 몰래 케익과 '감사합니다'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지희는 역시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고 우리의 첫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늘 그렇지만 지희는 눈치가 늦은 편이라 몰래 이벤트 하기에 아주 좋습니다. :D 크리스마스 당일에는 오전에 수원의 교회에 들러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는 일산 킨텍스로 가서 브라운 아이드 소울 콘서트를 보기로 예매했습니다... 2016. 2. 23.
공로상 ; 오늘도 출근하는 지희에게 지희에게 직장의 의미는 남달랐다. 첫 직장이자 7년을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켰던 지희에게 마포의 의미는 정말 남달랐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은 지희를 너무 일찍 철들게 했고, 대학생활의 낭만 따위는 한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살았다. 이것저것 안해본 적이 없었던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라기 보다는 살기위한 발버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게 숨쉴 틈조차 잠깐 쉬어갈 여유조차 없었던 지희가 막연하게 맞게 된 졸업, 그땐 정말 더 막막했을 것이다. 어렸지만 어린 티 낼 수 없었던 스물 넷 그때 처음 계약직으로 직장을 갖게 된 것이 지금의 마포다. 지희가 어느덧 4년차 사회복지사였던 그때, 나는 미래에 대한 아무 진지한 고민이 없는 대학생이었다. 용돈벌이를 위해 근로학생을 하며 학교를 빈둥거리던 어느 겨울 방학, .. 2016. 2. 4.
새벽 6시 30분에 마포에서 해장국을 먹은 까닭 결혼 후에 나는 매주 지희와 함께 교회를 가기 위해 수원에 다녀온다. 어제도 주일이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기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예배 후엔 늘 처가에 들러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고 때론 저녁까지 먹고 오기도 한다. 어제도 그런 평범한 주일이었다. 단, 날씨가 너무 추웠다는 것만 빼고는.[제이디]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페이스북 페이지를 결혼 후에 [지희남편]으로 바꾸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가끔씩 올리곤 한다. 지난주, 교회에서 정식 등록교인이 되었다는 축하 꽃다발을 받은 것을 기념해서 지희와 할머니의 사진을 찍어 지희남편 페이지에 올렸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 저멀리에서 지희도 잘 몰랐던 삼촌과 고모께서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을 주셨다. 아버님과 어머님, 할머니께 댓글들을 읽어 드리고 몇.. 2016. 1. 25.
[작은 결혼식] 신랑신부 혼인서약 (함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서로를 존중하며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신부 : 하나, 매일 아침, 남편을 위해 맛 보다는 정성이 가득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신랑 : 때로 먹기 힘든 아침이 나오더라도 맛보다 의리로 남기지 않고 식사하겠습니다. 신부 : 둘, 우리 차가 좀 작더라도 내 옆에 앉은 든든한 당신을 보며 만족하겠습니다. 신랑 : 우리 집이 좀 낡았어도 내 옆에 누운 사랑스러운 당신을 보며 만족하겠습니다. 신부 : 셋, 결혼 후 엄마가 되어서도 뚱뚱하고 후줄근한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겠습니다. 신랑 : 나이가 들어서도 당신이 기억하는 내 첫 모습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 : 넷, 때로.. 2015. 11. 5.
[작은 결혼식] 신부 감사인사 이 자리에 있기까지 저를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30년 동안 저를 지금껏 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양육해 주신 부모님. 제가 무심한 딸이라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을 많이 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예쁘고, 바르게 키워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쌍둥이 두 딸 모두 시집보내고 적적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지만 더 자주 연락드리고, 더 많이 효도하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해주신 시어머님. 아직 서툰 것이 많지만 이를 예쁘게 봐주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에서 으뜸가는 며느리가 될게요. 약속드립니다. 항상 저희가 믿음 안에서 교제할 수 있고, 믿음의 가정을 세워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신 목사님과 사모님 우리교회 식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희 직장에도 감사합니.. 2015. 11. 5.
[작은결혼식] 신랑감사인사 어렸을 때는 서른이면 아들 딸 둘 낳고 오순도순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인생은 누군가의 말처럼,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순탄하지 않았지만, 막연했던 서른 살이 현실이 된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음이 참 고마운 이 순간입니다. 이렇게 기쁜 날이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아들 몫까지 넘치는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똥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듯이 등을 두들겨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이 참 그립습니다. 술만 드시면 군대 얘기 전쟁 얘기 몇 시간이고 늘어놓으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 너무도 크고 멋있었던 할아버지 자전거, 그 자전거 타고 오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린 조카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주셨던 외삼촌 생각이 납니다. ‘이놈 자.. 2015.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