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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기록/지희네 이야기

아버님 전상서

by j제이디 2017. 8. 2.

* 이 글은 2016년 9월 29일에 개인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어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어제가 몇 번째 기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아주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우리 집에서 아버지에 관한 궁금증은 금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저 당신께서 어머니보다 두세 해 먼저 태어나셨겠거니 짐작만 하고 있었고, 매년 음력으로 돌아오는 기일은 한 번도 제대로 기억한 적이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버지와의 추억들은 단 한 장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려서 당신을 여읜 까닭이겠으나 머리가 기억할 나이였을 텐데 가슴이 모두 다 잊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내 삶에서 딱 두 번, 당신의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살다가 문득

<2013년 10월 3일 페이스북>


나는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늘 당신을 기억하며 울먹이는 엄마를 보며

20년도 더 지난 오늘이 당신이 떠난 날임을 압니다.


딱 한번 당신을 원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자리가 빈자리가 아니었다면

우린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린 조금 덜 힘들어하며 살았을 텐데


나는 당신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오늘 밤은 당신이 참 그립습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 어둡고 쓸쓸합니다.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사진으로말고

너무나 힘듭니다. 당신없이 살아내기가

흐르는 눈물 속 어렴풋한 당신의 모습

유난히 어둡고 쓸쓸한 가을밤 내 가슴이 아립니다.


 살다가 문득 아주 가끔씩은 사무치게 그립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가슴 저리게 깨닫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이날도 아마 그랬나 봅니다. 흔한 추억하나 작은 기억하나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런 감정이 없지만 아주 가끔은 그립고 더 가끔은 원망도 하곤 했습니다.


▶ 이렇게 기쁜 날

<2015년 10월 17일 결혼식>


어렸을 때는 서른이면 아들 딸 둘 낳고 오순도순 살아갈 줄 알았습니다. 인생은 누군가의 말처럼,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순탄하지 않았지만, 막연했던 서른 살이 현실이 된 지금 이렇게 여러분들 앞에서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음이 참 고마운 이 순간입니다.


이렇게 기쁜 날이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아들 몫까지 넘치는 사랑을 주셨던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똥강아지 머리를 쓰다듬듯이 등을 두들겨 주시던 할머니의 손길이 참 그립습니다.

술만 드시면 군대 얘기 전쟁 얘기 몇 시간이고 늘어놓으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납니다. 어렸을 때 너무도 크고 멋있었던 할아버지 자전거, 그 자전거 타고 오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생생합니다.

어린 조카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주셨던 외삼촌 생각이 납니다. ‘이놈 자식’ 하시며 무뚝뚝하게 부르시던 그 입가에 미소, 그 다정함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쁜 날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너무나 어려서 돌아가셨기에 당신과의 작은 추억조차 없었고, 당신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늘처럼 기쁜 날에는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려서는 철없는 마음에 당신을 원망하기도 했었지만 이렇게 기쁜 날, 내 앞에 당신이 앉아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어려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엄마한테 잘해라”라는 말이었습니다. 참 모진 인생 한평생 못난 아들만 바라보시며 자랑해 오신 엄마, 참 고맙습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손가락질 안당하고 사람들에게 “착하다, 잘 컸다” 들었던 칭찬은 모두 엄마의 희생임을 잘 압니다. 여전히 엄마한테 잘 못하는 아들이지만 앞으로 효도하며 살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가족, 친척, 동료, 선후배, 친구들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내 새끼 잘 살고 있구나’하고 행복해하실 수 있도록 잘 살겠습니다.


하나님과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여기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께 약속드립니다.

우리 잘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며 분주한 행사 대신 우리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신랑 감사 인사를 준비하며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사람들이지만 지금 내 곁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을 전했습니다. 감사 인사를 연습하면서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는데,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입을 떼기는 더 어려웠습니다. 준비한 감사 인사를 다 전하지 못한 채 하염없이 흐르기만 했던 눈물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감사가 담겨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 물론 가장 큰 것은 감사입니다. 오늘도 잘 계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