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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기록/지희네 이야기

우리가 사랑한 시간 [1년]

by j제이디 2017. 8. 2.

*이 글은 2016년 10월 17일에 홈페이지에 썼던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오늘은 지희와 결혼한 지 1년이 되는 날입니다. 2014년에 만나 2015년에 결혼했습니다. 어렸을 때 막연히 아들딸 둘 낳고 오손도손 잘살 줄 알았던 서른에 결혼을 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사랑만 가지고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하겠냐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1년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비록 적었으나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마종기 시인은 ‘우화의 강’이라는 시에서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고 했습니다. 30년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살아온 우리 사이에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는 사이가 된 것 같습니다. 시인은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말합니다. 우리 삶을 가벼운 일로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서로를 만나 오래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이겠지요. 지난 1년,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생각할 때면 서로에게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 시원하고 고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 우화의 강 / 마종기 –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서로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가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어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 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장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지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우리는 작은 결혼식을 했습니다. 원래는 더 작은 결혼식이 하고 싶었고 처음에는 결혼 예식이 없는 결혼식을 하고 싶었습니다.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해야만 했던 허례허식들을 모두 접어두고 둘이서 성경책에 손 얹고 언약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서로 반지하나 맞춰 끼고 결혼을 했지만 결혼 예식은 우리 둘만의 일이 아니었기에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점점 규모가 커졌습니다. 다른 부분은 양가 부모님들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 결혼식을 하지 않은 것은 부모님들의 상식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이서 하려했던 결혼식이 직계가족이 참석하는 결혼식으로 바뀌었고 다시 친척과 친구들도 참여하는 결혼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웨딩촬영이나 결혼식 식순은 모두 생략하고 레스토랑에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는 큰 작은(?) 결혼식이 된 겁니다.

 

 결혼 예배를 드리기고 하고 예배 순서를 모두 우리가 채워나갔습니다. 축가를 없애고 신랑 신부가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청첩장의 문구도 직접 적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예배 순서도 PPT로 만들고 자리도 직접 준비했습니다.


직접 만들었던 결혼 예배 순서 PPT


사진을 찍고 문구를 직접 적었던 청첩장


오월보다 푸른 서로를 만나

시월 단풍처럼 서로에게 물들어갑니다.


서로 무엇을 더 바라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렵니다.


함께 만들어갈 작은 이야기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며 축복해주세요.


청첩장을 만들며 직접 썼던 이 짧은 문구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 줬습니다. 우리의 진심이 통한 것 같아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서로에게 약속했습니다.


신랑신부혼인서약


(함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 서로를 존중하며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가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신부 : 하나, 매일 아침, 남편을 위해 맛 보다는 정성이 가득한 아침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신랑 : 때로 먹기 힘든 아침이 나오더라도 맛보다 의리로 남기지 않고 식사하겠습니다.


신부 : 둘, 우리 차가 좀 작더라도 내 옆에 앉은 든든한 당신을 보며 만족하겠습니다.

신랑 : 우리 집이 좀 낡았어도 내 옆에 누운 사랑스러운 당신을 보며 만족하겠습니다.


신부 : 셋, 결혼 후 엄마가 되어서도 뚱뚱하고 후줄근한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겠습니다.

신랑 : 나이가 들어서도 당신이 기억하는 내 첫 모습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신부 : 넷, 때로 삶에 어렵고 힘든 순간이 온다하여도 내 손을 꼭 잡은 당신만을 믿고 의지하겠습니다.

신랑 : 밝은 미소 뒤에 숨긴 한줄기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사려 깊은 남편이 되겠습니다.


신부 : 다섯, 화내기보다 참을 줄 알고 재촉하기보다는 기다릴 줄 아는 현명한 아내가 되겠습니다.

신랑 : 아내의 말을 잘 해독하고 달라진 화장을 잘 분별하는 지혜로운 남편이 되겠습니다.


신부 : 여섯, 첫 만남의 떨림, 첫 고백의 설렘을 간직하며 평생 콩깍지를 쓰고 살겠습니다.

신랑 : 사랑의 화학작용이 멈춘다고 해도 강한 의지를 갖고 평생을 사랑하겠습니다.


신부 : 일곱, 십년이 지나도, 또 십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사랑하겠습니다.

신랑 : 마흔 살, 쉰 살이 되어도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로 당신과 함께하겠습니다.


(함께) 우리의 결혼을 축복해 주시는 여러분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재미있지만 진지하게 적었던 혼인서약대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일 (정성만 가득한)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지친 하루의 끝엔 작은 위로가 되고 눈물 나는 날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너른 품이 되어줍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욕심내기보다 소소한 행복들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흔들림 없이 버텨왔고 잘 살고 있습니다. 지난 1년이, 오늘이, 앞으로의 시간들이 함께라서 더 행복하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