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지희는 7년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자기 자신이 선택한 일이고 퇴사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내의 마음에 아쉬움이나 허전함은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도 그렇게 보였고 다만 그 마음에 당분간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함보다는 출근할 곳이 없다는 불안함이 더 커보였다.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고자 우리는 무작정 떠났다. 아침에 집을 나서 양평, 남양주, 가평, 하남을 거쳐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계획 없는 하루를 보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양평 두물머리였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대로 남한강은 유유히 흘렀고 초여름의 끈적거림보다는 늦봄의 싱그러움이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연잎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흐드러지게 피어있었고 너른 잎들 사이로는 두루미가 얌전하게 날고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평화롭기까지 했던 그때, 지희가 한마디 했다.
“우리, 네잎클로버 찾아볼까?”
그 순간 나는 거의 입 밖으로 ‘네잎클로버 꽃말이 뭔지 알아?’하고 내뱉을 뻔했다.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고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다. 나는 ‘세잎클로버를 보면 되지 왜 네잎클로버를 찾느냐’, ‘왜 네가 가진 행복은 보지 못하고 행운을 찾으려 하느냐’하고 말할 뻔 했던 것이다.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들을 다 삼키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웃어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던 연잎
지희는 그저 눈앞에 세잎클로버가 보여서 네잎클로버를 찾아보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자기가 네잎클로버를 찾자고 했던 말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순간 내 머리 속에는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도 지희의 마음에는 내일 당장 ‘출근할 곳이 없다는 불안’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까지 한 달여의 시간동안 지희는 참 많이 불안해했고 초조해했다.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하는 서른 한 살의 유부녀. 지희가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것은 네잎클로버의 꽃말처럼 행운이 아닐까 싶은 시간들이었다.
지희가 새로운 직장으로 옮기게 되면 네잎클로버 얘기를 해주려고 했다. 지희는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고 이제는 시간도 꽤 지났다. 그런데 아직 네잎클로버 얘기를 기억하는지 묻지 않았다. 한동안은 새로운 직장이 너무 좋다고만 하기에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활달하지 못한 성격에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시간이 좀 더 지난 요즘은 회사에서 있었던 안 좋은 얘기들도 이따금 늘어놓곤 한다. 그래서 이렇게 미뤄뒀던 네잎클로버 이야기를 꺼내본다.
행복했던 그날의 기억을 찬찬히 돌아보니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다. 어쩌면 그날 지희가 찾고 싶었던 것은 세잎클로버도 네잎클로버도 아닌 여섯잎클로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 말이다. 세잎클로버는 행복, 네잎클로버는 행운, 여섯잎클로버는 기적이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 지희에게는 새로운 직장을 찾고 적응하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을지 모르겠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간절했다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행복들이 모여 기적을 이뤄냈다.
이제는 그날의 네잎클로버 얘기를 해본다. 당신과 나 사이의 행복이 모여 우리는 기적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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