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본 것은 아마도 2008년으로 기억한다. 노래 전곡을 들은 것은 아니고 친구가 이상한(?) 노래가 있다며 편집된 동영상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당시엔 그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영상에는 장기하가 두 팔을 흐느적거리며 ‘달이 차오른다 가자’의 한 부분을 읊조리고 있었다. 유머 사이트에서 처음 보게 된 짧은 영상이 장기하와 얼굴들을 처음 접한 순간이었다. 아, 그땐 미미 시스터즈도 있었던 것 같다.
장기하와 얼굴들은 2008년 5월 싱글 <싸구려 커피>로 데뷔했다. 유머 사이트에서 처음 본 그 영상 속의 그 노래가 실린 앨범 말이다. 그 짧은 영상 속의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이상했던 이 가사가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트리플덴트 껌 광고 노래처럼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싸구려 커피>의 전곡을 찾아 듣게 되고 이후 발매되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앨범들을 전부 듣게 되었다.
장기하와 얼굴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이 꾸준히 정규앨범을 발매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장기하와 얼굴들의 대중적 인기곡들은 ‘싸구려 커피’, ‘우리 지금 만나’, ‘풍문으로 들었소’ 등 싱글앨범 곡이거나 다른 가수 앨범의 곡, 혹은 영화 OST의 수록곡이다. 하지만 장기하와 얼굴들의 진가는 그들의 정규 앨범에서 나온다. 어렸을 때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면 줄서서 CD를 구매하던 그때의 기분을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에서 느낄 수 있다. 요즘은 한곡 한곡을 담아 랜덤으로 재생하지만 앨범을 구매하면 1번 트랙부터 순서대로 들었던 때가 있었다. 인트로부터 아웃트로까지 트랙 순서대로 가수들이 곡을 채운 앨범은 랜덤으로 듣지 않고 순서대로 들어야 진가가 드러난다. 최근엔 이런 앨범들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장기하와 얼굴들이 그렇고 버스커 버스커의 앨범도 그렇다.
장기하와 얼굴들 2집 <장기하와 얼굴들>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2집 앨범이다. 2집 앨범이 처음 나왔을 때 몇날 며칠이고 내내 앨범을 돌려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더블 타이틀곡인 ‘그렇고 그런 사이’나 ‘TV를 봤네’가 아니고 8번 트랙에 있는 ‘그때 그 노래’다. 장기하의 자작곡인 이 노래는 그가 좋아하는 산울림의 음악을 닮은 것 같다. 빠른 비트도 아니고 강력한 후렴구가 있는 것도 아닌 잔잔한 노래를 가만히 듣고 있다 보면 가삿말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나즈막이 읊조리는 장기하의 목소리가 마음에 박힌다.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몇 달째 구석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음반을 괜히 한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첫 가사부터 심상치 않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오래된 노래가 좋은 이유는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니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울며불며 가슴 아파했던 일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예쁜 물감으로 서너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
노래를 듣다보면 이층집 나무 계단 아래 오래된 장식장 안에 무심히 놓아 두었던 먼지 쌓인 앨범이 떠오른다. 손으로 쓱싹 먼지를 닦아내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감상에 잠긴 소년이 떠오른다. 한참 노래를 듣다보니 문득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래도 그 짧은 순간, 그때 그 생각들에 미소짓는 모습들이 그려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이가 느껴지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때 그 노래’를 추천한다.
장기하와 얼굴들 – 그때 그 노래
[작사: 장기하 / 작곡: 장기하 / 편곡: 장기하와 얼굴들]
너무 빨리 잊어버렸다 했더니
그럼 그렇지 이상하다 했더니
벌써 몇 달째 구석자리만을 지키고 있던 음반을
괜히 한 번 들어보고 싶더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예쁜 물감으로 서너 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
그렇다고 내가 눈물 한 방울 글썽이는 것도 아니지마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예쁜 물감으로 서너 번 덧칠했을 뿐인데
어느새 다 덮여버렸구나 하며 웃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오래된 예배당 천장을
죄다 메꿔야 하는 페인트장이였구나
그렇다고 내가 눈물 한 방울 글썽이는 것도 아니지마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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