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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정치와 경제

호남 참패, 문재인 용퇴를 이야기 하는 분들께

by j제이디 2016. 4. 15.

4/13 총선 결과가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157석으로 원내 제1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의석은 2004년 탄핵 이후 치러진 4/15 총선때보다 딱 1석 많은 122석이 되었습니다. 102석으로 원내 제2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새누리당보다 1석 많은 123석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의 정국을 만들어내는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민심이 심판한 총선의 후폭풍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일부에서 점점 커지는 문재인 책임론에 대해 반론을 펼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총선 결과와 자신의 거취를 연관지어 이야기 한것은 총 3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의 정계 은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최근 호남에서 했던 세번째 발언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발언에 대한 해석도 다분히 자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책임을 이야기 한 지난 세번의 발언을 돌아보겠습니다. 

1. 1월 19일, 신년 기자회견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19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당 대표직 사퇴와 총선 결과에 따른 정계은퇴를 공언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직에 있든 있지 않든, 백의종군이든 총선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또 지게 될 것이다.""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 희망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겸허하게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라고) 인정하지 않겠나"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말한 정권교체의 희망은 새누리당의 과반수 의석 저지였습니다. 사실 1월까지 가지 않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가 최소 180석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에는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날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에 염증을 느낀 문재인 대표가 정치를 그만두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개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무도 희망을 이야기 하지 못하던 때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 과반 저지를 외쳤고, 총선 결과로 자신의 말을 증명했습니다. (총선 이전 새누리 157석 → 총선 이후 새누리 122석)


2. 3월 16일, 관훈클럽 토론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현재 가진 의석 수 정도만 확보하면 선전했다고 판단한다.""선거 결과가 나오면 선거를 이끈 사람이 책임지는 선례를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종인 대표를 모셔온 문재인 전 대표도 같은 책임의 무게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한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김종인 대표의 당대당 통합에 대한 제안과 국민의 당의 거부가 있었고, 문재인 전 대표가 당대표 시절 추진하던 정의당과의 단일화도 물건너간 시점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4/13 총선 이전의 '현재 가진 의석 수'는 107석으로 민주통합당 시절 127석에서 20석이나 줄어든 수치였습니다. 언론에서는 107석을 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지나치게 방어적인 것이 아니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것도 현실이었습니다. 1월 19일 신년 기자회견이 상대당인 새누리당의 과반 저지를 목표로 내세웠고, 3월 16일의 관훈클럽 토론회는 자신의 당의 목표 의석을 107석으로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표는 지역구만으로 109석을 확보하며 이번에도 총선 결과로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총선 이전 더불어민주당 107석 →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123석)


3. 4월 8일, 광주 충장로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

(9분 부터 불출마 발언)

당 지도부의 만류로 총선 막판까지 광주와 호남을 찾지 못했던 문재인 전 대표는 총선을 닷새 앞둔 4월 8일, 광주 충장로를 찾아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전합니다. 이 글에서 문재인은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는 저에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하지 않았던 발언이 이어집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에서, 경남에서, 울산에서, 대구에서, 경북에서, 강원에서 더 늘어난 승리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새누리 압승 앞에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던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이 발언 마저도 문재인은 결과로 증명했습니다. (부산 2석 → 5석, 경남 1석 → 3석, 대구 0석 → 1석, 강원 0석 → 1석)


문재인 전 대표가 만들어낸 이변에 가까운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재인 전 대표의 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들 광주 발언을 두고 정계 은퇴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호남 민심은 정말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거둔 것일까요?


▷ 1. 호남 득표수 비교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참패'에 대해 지역구 당선 결과만 놓고 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개별 후보들의 득표수 합계를 보면 지역구 결과와는 다른 숨은 지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선거제도에 따른 차이입니다.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한 선거에서 한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제도로 한 지역구에서 한표라도 더 많이 얻는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입니다. 소선거구제도는 필연적으로 다수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역구 숫자가 다 담지 못하는 숨은 지지를 득표수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한 더불어민주당이 유이하게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한 정당에 전 의석을 내준 곳은 경북과 광주입니다. 광주는 총 8개의 지역구가 있고 8곳 모두 국민의당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당선자들의 얻은 표를 합산하면 전체 득표 중 국민의 당은 56.33%만을 득표했을 뿐입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4.10%를 득표했지만 소선거구제에 따라 단 한석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전남은 총 10개의 지역구가 있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1석, 국민의당이 8석의 정당을 획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역구 의원의 득표 격차는 더욱 줄어들었지만 의석수에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38.10%를 획득한 더불어민주당과 11.64%를 획득한 새누리당은 동일하게 1석을 차지합니다. 


전북 역시 10석의 지역구가 있습니다. 전북은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득표차가 가장 적은 지역이지만 의석수에서는 전남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역시 10% 남짓의 새누리당이 1석, 38.77%의 더불어민주당이 2석, 42.19%의 국민의당이 7석을 차지했습니다. 3.42%의 차이가 5석의 차이로 이어진 것입니다. 


호남의 지역구 총합은 28석입니다. 호남에서 지역구에 투표한 유효 득표중 새누리가 8.44%를 얻고 2석을 얻은 반면 37.27%의 더불어민주당이 3석, 46.58%의 국민의당이 23석을 차지했습니다. 국민의당이 득표한 46.58%가 호남지역 지역구의 82.14%를 획득하게 했습니다. 이는 철저하게 선거구제도에 의한 결과로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단 3석을 차지했다고 해서 호남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 2. 너무 늦었던 타이밍

문재인 전 대표는 길지 않은 정치 인생 내내 실체없는 음모와 모함에 시달려 왔습니다. 최근 1년만 보더라도, 정당한 절차에 의해 선출된 당대표 자리를 끊임없이 안밖에서 흔들어댔고, 총선 정국에서는 '호남 홀대론'에 발목을 잡혔습니다. 87년 부산에서 광주를 알렸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전무후무한 호남 인재 등용에도 불구하고 종편을 비롯한 언론은 문재인과 호남을 갈라 놓았고, 당내에서도 문재인의 발을 호남으로 향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랬기에 호남의 민심을 완전히 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습니다. 문재인 대표가 광주를 찾은 것이 4월 8일, 선거를 불과 닷새 앞둔 때였습니다. 
총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의 허무맹랑함을 깨닫게 되었지만 오늘 발표된 <알앤써치>의 여론조사에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여론조사는 조사방법(RDD 유/무선 비율 등)과 낮은 응답률이 조사 결과의 편향을 발생할 수 밖에 없어 특정 시점의 자료를 맹신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전후 흐름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 정당 지지율 : 1. 더불어민주당(30.2%), 2. 새누리당(27.7%), 3. 국민의당(21.5%), 4. 정의당 (7.5%)
<알앤써치>의 정당지지율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직전 조사보다 무려 9.8% 급등한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8.5%나 감소했습니다. 4/13총선 비례대표 투표 결과와 이번 여론조사를 보면 정당지지에서 만큼은 확실하게 3당 체제가 확립된 모양새입니다. 

- 정당 지지율(호남) : 1. 국민의당(42.5%), 2. 더불어민주당(38.5%)
이번 총선에서 호남지역 비례투표 결과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두자리수 이상으로 크게 앞섰습니다. 하지만 불과 하루만에 여론조사이지만 그 간격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직전 여론조사보다 14.9% 오른 지지율을 얻었지만 국민의당 지지율은 3.9% 하락했습니다. 

- 대선후보 지지율 : 1. 문재인(28.1%), 2. 안철수(17.1%), 3. 김무성(7.6%), 4. 오세훈(7.1%), 5. 박원순(6.8%)
차기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이전보다 지지율이 6.0%나 오르며 굳건한 1위를 지켰고 안철수 공동대표도 6.2%나 지지율이 올랐습니다. 반면 당대표직에서 물러난 김무성 전대표는 7.1%, 선거에서 패배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6.9% 지지율이 하락했습니다. 

문재인 전대표는 여전히 호남을 포함한 전국에서 가장 높은 개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번 총선 결과로 당의 지지율도 높이 끌어 올렸습니다. 오늘의 여론조사를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여론조사의 추세는 의미가 있습니다. 결국 문재인의 호남 방문 타이밍이 조금 더 빨랐다면 호남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볼 수 있고, 문재인이 아니었다면 호남에서 이만한 지지를 받아내기가 어려웠고, 최악의 경우 새누리당(2석)보다 더 적은 의석수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종편에서 문재인의 발목을 잡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당내에서 문재인의 발목을 잡은 사람들은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3. 호남과 영남, 그리고 전국 정당

종편을 비롯한 여론과 정치권, 심지어 당내에서도 끊임없이 문재인을 흔들어 댔지만 결국 지지자마저 그의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 더불어민주당은 호남에서 많은 의석을 잃었지만 그 반대급부로 영남을 비롯한 전국에서 고른 지지를 받으며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 부산 
1992년, 제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한 통합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31.9%의 득표율을 얻어 허삼수 후보에게 패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주의의 벽에 좌절했던 것이 불과 20여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고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문재인 전 대표가 유일했습니다. (조경태 후보는 당선 당시는 민주당 소속) 그런데 4년만에 부산이 변했습니다. 이번 총선 부산지역에서 가장 적은 득표를 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무려 24.1%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것도 다야구도에서 이뤄낸 성과입니다. 부산 지역 18개의 선거구 가운데 5개 지역에서 더불어 민주당을 선택해 주었고 낙선한 지역에서도 이전과 다른 높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 경남, 대구, 강원
부산과 함께 낙동강 벨트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경남에서도 야권의 당선자들이 나왔습니다. 봉하마을이 있는 김해시는 2개 선거구에서 모두 더불어민주당의 손을 들어줬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후보는 지역구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중에서 가장 높은 62.4%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양산 을에서도 서형수 후보가 당선되었고, 거제와 양산 갑에서는 아까운 낙선이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깨고 싶었던 지역주의의 벽에 확실한 금이 생겼습니다. 
대구의 김부겸 후보와 컷오프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홍의락 후보는 물론, 원주와 춘천을 중심으로 강원에서도 당선자 1명을 배출하고 이전과 다른 높은 당 지지를 이뤄냈습니다. 이 모두가 문재인 개인기로 이뤄낸 것은 아니지만 호남에서 맞은 회초리를 타 지역에서 어루만져준 셈입니다.  

- 수도권
문재인 지지자의 표심 결집을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은 수도권이었습니다. 무려 112석의 지역구가 있는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82석을 차지하며 제1당으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총선 기간내내 문재인 개인의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는 오프라인인 지원유세 현장과 온라인 모두에서 드러났습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말하는 밑바닥 표심이 문재인을 지지하고 있었고 혼자서 대선을 치르는 듯한 구름 인파들이 이를 증명해 줬습니다. 수도권의 호남 표심이 더불어민주당으로 결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입니다. 
수도권 결집과 함께 2-30대의 높아진 투표율도 더불어민주당에게는 호재였습니다. 여전히 가장 낮은 투표율이었지만 20대 투표율이 19대에 비해 가장 큰폭으로 올랐습니다. 젊은 층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문재인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실 탄핵 정국이 아니고는 여소야대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여소야대를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1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적어도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냈습니다. 여전히 종편을 비롯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쉴새없이 문재인을 흔들어대고 그 주변을 분열시키려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문재인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호남 참패와 문재인 용퇴를 이야기 하기에는 호남 민심이 문재인을 버렸다 할 수 없으며, 유래없는 전국의 고른 지지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문재인의 거취보다는 우리가 모아준 민심을 20대 국회와 정치권이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는지 지켜보는 것이 더 의미있어 보입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 20대 국회는 개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투표일 단 하루만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