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 결과가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157석으로 원내 제1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의석은 2004년 탄핵 이후 치러진 4/15 총선때보다 딱 1석 많은 122석이 되었습니다. 102석으로 원내 제2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의석은 새누리당보다 1석 많은 123석으로 16년 만에 여소야대의 정국을 만들어내는 일대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민심이 심판한 총선의 후폭풍이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일부에서 점점 커지는 문재인 책임론에 대해 반론을 펼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총선 결과와 자신의 거취를 연관지어 이야기 한것은 총 3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의 정계 은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최근 호남에서 했던 세번째 발언에만 집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발언에 대한 해석도 다분히 자의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책임을 이야기 한 지난 세번의 발언을 돌아보겠습니다.
1. 1월 19일, 신년 기자회견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 1월 19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당 대표직 사퇴와 총선 결과에 따른 정계은퇴를 공언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 대표직에 있든 있지 않든, 백의종군이든 총선 결과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또 지게 될 것이다."며 "이번 총선에서 정권교체 희망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겸허하게 제 역할은 여기까지다(라고) 인정하지 않겠나"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표가 말한 정권교체의 희망은 새누리당의 과반수 의석 저지였습니다. 사실 1월까지 가지 않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새누리가 최소 180석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에는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이날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치에 염증을 느낀 문재인 대표가 정치를 그만두기 위한 명분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개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아무도 희망을 이야기 하지 못하던 때 문재인 대표는 새누리 과반 저지를 외쳤고, 총선 결과로 자신의 말을 증명했습니다. (총선 이전 새누리 157석 → 총선 이후 새누리 122석)
2. 3월 16일, 관훈클럽 토론회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현재 가진 의석 수 정도만 확보하면 선전했다고 판단한다."며 "선거 결과가 나오면 선거를 이끈 사람이 책임지는 선례를 따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종인 대표를 모셔온 문재인 전 대표도 같은 책임의 무게를 떠안게 되었습니다. 한달 전으로 시계를 돌려 보면, 김종인 대표의 당대당 통합에 대한 제안과 국민의 당의 거부가 있었고, 문재인 전 대표가 당대표 시절 추진하던 정의당과의 단일화도 물건너간 시점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4/13 총선 이전의 '현재 가진 의석 수'는 107석으로 민주통합당 시절 127석에서 20석이나 줄어든 수치였습니다. 언론에서는 107석을 목표로 제시하는 것이 지나치게 방어적인 것이 아니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은 것도 현실이었습니다. 1월 19일 신년 기자회견이 상대당인 새누리당의 과반 저지를 목표로 내세웠고, 3월 16일의 관훈클럽 토론회는 자신의 당의 목표 의석을 107석으로 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문재인 전 대표는 지역구만으로 109석을 확보하며 이번에도 총선 결과로 자신을 증명했습니다. (총선 이전 더불어민주당 107석 →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 123석)
3. 4월 8일, 광주 충장로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
(9분 부터 불출마 발언)
당 지도부의 만류로 총선 막판까지 광주와 호남을 찾지 못했던 문재인 전 대표는 총선을 닷새 앞둔 4월 8일, 광주 충장로를 찾아 '광주 시민들에게 드리는 글'을 전합니다. 이 글에서 문재인은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시겠다면, 저는 미련 없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대선에도 도전하지 않겠습니다."며 "진정한 호남의 뜻이라면, 저는 저에대한 심판조차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주목하지 않았던 발언이 이어집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부산에서, 경남에서, 울산에서, 대구에서, 경북에서, 강원에서 더 늘어난 승리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새누리 압승 앞에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았던 암울한 상황이었지만 이 발언 마저도 문재인은 결과로 증명했습니다. (부산 2석 → 5석, 경남 1석 → 3석, 대구 0석 → 1석, 강원 0석 → 1석)
문재인 전 대표가 만들어낸 이변에 가까운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재인 전 대표의 공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다들 광주 발언을 두고 정계 은퇴에만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호남 민심은 정말 문재인에 대한 지지를 거둔 것일까요?
▷ 1. 호남 득표수 비교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참패'에 대해 지역구 당선 결과만 놓고 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개별 후보들의 득표수 합계를 보면 지역구 결과와는 다른 숨은 지지를 파악할 수 있는데, 이는 선거제도에 따른 차이입니다.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한 선거에서 한명의 당선자를 배출하는 제도로 한 지역구에서 한표라도 더 많이 얻는 후보가 당선되는 방식입니다. 소선거구제도는 필연적으로 다수의 사표를 발생시키고 소수 정당의 원내 진입을 막는 장벽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역구 숫자가 다 담지 못하는 숨은 지지를 득표수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한 더불어민주당이 유이하게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한 정당에 전 의석을 내준 곳은 경북과 광주입니다. 광주는 총 8개의 지역구가 있고 8곳 모두 국민의당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습니다. 그런데 당선자들의 얻은 표를 합산하면 전체 득표 중 국민의 당은 56.33%만을 득표했을 뿐입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4.10%를 득표했지만 소선거구제에 따라 단 한석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전남은 총 10개의 지역구가 있고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1석, 국민의당이 8석의 정당을 획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역구 의원의 득표 격차는 더욱 줄어들었지만 의석수에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38.10%를 획득한 더불어민주당과 11.64%를 획득한 새누리당은 동일하게 1석을 차지합니다.
전북 역시 10석의 지역구가 있습니다. 전북은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득표차가 가장 적은 지역이지만 의석수에서는 전남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역시 10% 남짓의 새누리당이 1석, 38.77%의 더불어민주당이 2석, 42.19%의 국민의당이 7석을 차지했습니다. 3.42%의 차이가 5석의 차이로 이어진 것입니다.
호남의 지역구 총합은 28석입니다. 호남에서 지역구에 투표한 유효 득표중 새누리가 8.44%를 얻고 2석을 얻은 반면 37.27%의 더불어민주당이 3석, 46.58%의 국민의당이 23석을 차지했습니다. 국민의당이 득표한 46.58%가 호남지역 지역구의 82.14%를 획득하게 했습니다. 이는 철저하게 선거구제도에 의한 결과로 호남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단 3석을 차지했다고 해서 호남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다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 2. 너무 늦었던 타이밍
▷ 3. 호남과 영남, 그리고 전국 정당
사실 탄핵 정국이 아니고는 여소야대를 기대하기 어려웠고 여소야대를 넘어 더불어민주당의 1당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은 적어도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냈습니다. 여전히 종편을 비롯한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쉴새없이 문재인을 흔들어대고 그 주변을 분열시키려 할 것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문재인의 위력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호남 참패와 문재인 용퇴를 이야기 하기에는 호남 민심이 문재인을 버렸다 할 수 없으며, 유래없는 전국의 고른 지지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문재인의 거취보다는 우리가 모아준 민심을 20대 국회와 정치권이 얼마나 신성하게 여기는지 지켜보는 것이 더 의미있어 보입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 20대 국회는 개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투표일 단 하루만 이 나라의 주인이 아닙니다.
'수필집 : 글상자 > 정치와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4/13 총선 개표부정? 경남 진주시 수곡면 의문의 177표 (0) | 2016.04.21 |
---|---|
필패 공식? 김무성의 어부바 [영상] (0) | 2016.04.18 |
논란이 된 진박명단? 유시민이 정리한 친박분류용어사전 (0) | 2016.01.27 |
한일 '위안부 문제' 24년만 해결, 박근혜 정부의 외교 성과? (0) | 2015.12.28 |
[2014.06.04] 투표하는 국민은 항상 옳습니다. (0) | 2014.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