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6년 12월 10일 홈페이지에 쓴 글을 옮긴 것입니다.
[전문]
2004년 2월 24일, 총선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은 취임1주년 기자회견을 합니다.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걸 다 하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던 결과는 탄핵이었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탄핵 카드를 꺼내 들었고, 중앙선관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상의 선거중립의무규정’에 위배된다며 유권해석을 내려줍니다. 군사정권 시절까지 갈 것도 없이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자행한 선물공세, 예산폭탄에 눈을 가리고 못본척 했던 선관위. 이제는 디도스공격, 투표소변경, 수개표누락 등으로 적극적으로 부정선거에 앞장서며 권력에 눈치를 보며 자신들의 의무를 망각한 채 범죄 집단이 되고만 이들이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적극 가담한 것입니다.
2004년 3월 9일, 국회의원 159명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사과하라는 여론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제게 잘못이 있어 사과하라하면 사과하겠다. 그런데 잘못이 없는데 시끄러우니 사과하고 넘어가자, 탄핵을 모면하자는 거라면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국회와 언론을 비롯해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자들은 대통령이 자신들에게 굽실거리며 몸을 낮춰 위기를 모면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3당 야합에 반대할 때 전 국민에게 보여줬던 기개가 있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소신을 굽히며 아침저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는 기회주의자도 아니었고, 대통령 자리에 연연하며 자기 주머니를 불리는 사람도 아니었고 국회의 탄핵쯤은 거뜬히 이겨낼 강단까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이 사람이 두려워 한 것은 단 하나, 국민 밖에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그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봤습니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렇게 수준 높은 시민들을 상대로 정치를 하려면 앞으로 누구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화문 네거리부터 덕수궁 대한문까지 길 전체가 시민들의 촛불로 가득했을 때, 대통령은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오직 주권자인 국민만을 두려워하는 대통령. 우리가 갖고 싶은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던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2004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 소추안 투표가 있던 국회는 의원들과 경호원들이 얽히고설킨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고성이 난무하고 이것저것 집기들이 날아다니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탄핵을 보며 혼자 고상하게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한 국회의원이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 8일, 그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자격으로 국회가 자신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12월 9일,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킵니다.
‘헌법 제1조, 제67조 제1항, 제66조 제2항, 제69조, 제7조, 제78조, 제11조, 제23조 제1항, 제15조, 제10조, 제119조 제1항, 제21조.’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제2조 제1항 제1호, 형법 제129조 제1항 또는 제130조, 제123조, 제324조, 제127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실망’과 대통령을 믿고 국정을 맡긴 주권자들에게 준 ‘돌이키기 힘든 마음의 상처’.
2016년의 대통령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만큼 많은 범죄를 저질렀고 국민들은 분노와 좌절을 넘어 허탈감까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책임이다. 꽃이 지고 홍수가 나고 벼락이 떨어져도 내 책임이야. 그게 임금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어떤 변명도 필요 없는 자리, 그게 바로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이도)을 연기했던 한석규는 위와 같이 핏대를 높여가며 열변을 토합니다. 물론 지금이 조선도 아니고 왕정국가도 아니지만 대통령은 최소한의 책무도 져버린 채 국가권력을 사유화하고 국정을 농단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해야 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조선의 왕과 같은 권력만을 탐냈던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 방청하던 세월호 유가족분들의 눈물
처음 최순실의 이름이 세간에 오르내릴 때 차라리 어리숙한 대통령이 교활한 사기꾼에게 속은 것이면 얼마나 다행일까 생각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국민만을 두려워했던 12년 전의 대통령과 달리 국민들이 들고 나온 촛불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탄핵을 당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범죄사실을 은닉하고 진실을 은폐하여 자신의 뒷배를 봐줄 사람들을 요직에 임명하는 추태를 선보였습니다.
어리석은 대통령이길 바랬지만 어리석고 교활한 대통령이었습니다.
12년 전과 비교했을 때 상황은 많이 달라져있습니다. 더 나아졌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12년 전에는 78% 국민이 반대하는 대통령 탄핵을 국회의원들이 밀어붙여 가결시켰지만 이번에는 81% 국민이 찬성하는 대통령 탄핵을 국민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해서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이제 결정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 (헌법 제103조)
12년 전 헌법재판소는 국회의 뜻에 따르지 않고 78% 국민의 뜻과 일치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81% 국민의 뜻이 헌법재판소에 전해졌습니다. 우리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듣고 배워왔습니다. 물론 2016년의 대한민국에는 ‘법은 큰 물고기만 빠져나가는 촘촘한 그물’이라는 말이 더 와 닿기는 합니다. 하지만 12년 전의 헌법재판소 판결이 그러했듯이 이번에도 바른 판결을 내려주리라 기대해봅니다.
이제는 법이 대답할 차례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정의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우리의 아이들에게 도덕적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국민들에게 역사가 준엄한 대답을 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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