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16년 9월 23일 홈페이지에 쓴 글을 옮긴 것입니다.
흔히들 야구를 기록의 스포츠라고 하지만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보잘것없는 기록으로 치열한 전쟁터를 버텨온 황덕균 선수의 ‘데뷔 14년 만의 첫 승’은 기록이나 숫자로는 전할 수 없는 깊은 감동을 줍니다. 감동을 던지는 투수, 인내의 아이콘 황덕균 선수의 지난 14년을 돌아보겠습니다.
▶ 기본 정보
– 생년월일 : 1983년 4월 28일
– 신장/체중 : 180 Cm / 84 Kg
– 경력(1) : 도신초-선린중-선린인터넷고
– 프로입단 : 2002년 두산 2차 4라운드 33순위
– 경력(2) : 두산 베어스-서울 해치-NC 다이노스-kt위즈-넥센 히어로즈
2002년 프로야구 신인 2차 지명 4라운드 33순위 두산 지명
▶ 2002년 신인 지명, 그리고 고영민
도신초-선린중-선린인터넷고 출신의 황덕균은 2002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로 두산에 지명됩니다. 전체 33순위로 뽑힌 황덕균은 도신초등학교 동기이자 가장 친한 야구 선수 고영민과 재회하게 됩니다.(고영민 2차 1라운드 9순위) 훗날 두산에서 방출되고 야구를 그만둔 황덕균은 고영민의 “다시 하면 되는데 왜 안해? 돌아와” 이 짧은 말에 다시 야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 2002년 신인 1차 지명선수 통산 WAR (지명팀)
1. 김진우(KIA) : 24.79
2. 권혁(삼성) : 19.55
3. 이재영(두산) : 11.34
4. 이정민(롯데) : 7.78
5. 신주영(한화) : 0.96
6. 김광희(LG) : 0.27
7. 조순권(현대) : 0.03 (한양대 진학이후 2006년 입단)
8. 김지완(SK) : 0.00
▷ 2002년 신인 2차 지명 주요선수 통산 WAR (지명팀/지명순위)
1. 최형우(삼성/6라 48순위) : 43.02
2. 장원삼(현대/11라 89순위) : 27.88
3. 안지만(삼성/5라 40순위) : 23.08
4. 조동찬(삼성/1라 8순위) : 16.70
5. 고영민(두산/1라 9순위) : 16.06
6. 윤길현(SK/1라 2순위) : 13.56
7. 박희수(SK/6라 43순위) : 12.91
8. 이현승(현대/3라 26순위) : 11.82
9. 김태완(한화/8라 60순위) : 10.24
10. 신용운(KIA/1라 5순위) : 10.11
11. 송광민(한화/10라 76순위) : 9.08
12. 신종길(롯데/6라 46순위) : 7.85
13. 고효준(롯데/1라 6순위) : 5.31
14. 손주인(삼성/3라 24순위) : 3.25
15. 문규현(롯데/10라 78순위) : 0.64
16. 황덕균(두산/4라 33순위) : 0.56
▶ 벽에 부딪힌 20살 황덕균
2002년 신인 2차 지명에서 전체 33순위로 두산에 지명됐던 황덕균은 ‘아마추어때 실력만 생각하고 프로에 오니까 벽에 부딪혔다’고 두산 시절을 회상했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과 맞붙게 된 프로에서 의욕만 가지고 살아남기는 힘들었다. 프로의 높은 벽을 실감한 황덕균은 프로 데뷔 2년만인 2004년 두산에서 방출된다. (1군 출장 없음)
일본 독립리그 스프링컵 MVP 당시의 황덕균 (2011년)
▶ 일본 독립리그 스프링컵 MVP로 부활한 황덕균
두산 베어스에서 방출되며 프로 선수로서의 자리를 잃은 황덕균은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며 병역의무를 마치게 됩니다. 비록 경찰청과 상무 입단에는 실패했지만 공익근무 기간 동안 운동을 쉬지 않았던 황덕균에게 구세주가 나타나게 됩니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야생마’ 이상훈과 그의 동료였던 LG 필승조 전승남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황덕균은 이상훈에게 슬라이더와 커브, 체인지업을 배워 단조로웠던 구종을 다양하게 늘렸고 볼 컨트롤도 좋아졌고 전승남을 통해서는 정신력과 끈기를 배웠습니다. 프로에 데뷔하자마자 20살의 어린 황덕균은 의욕을 잃고 방출되며 야구 선수로서의 설 곳을 잃었지만 이상훈과 전승남을 통해 기술과 정신력을 가다듬으며 다시 그라운드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간사이리그 서울 해치 시절의 황덕균 (2011년)
이상훈과 전승남을 통해 한층 성장한 황덕균이지만 개인 훈련으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사이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의 입단 테스트를 봤지만 모두 탈락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이상훈이 추천한 곳이 일본 독립리그인 간사이리그에 속한 서울 해치 팀이었습니다. 2011년 2월, 이상훈은 황덕균을 서울 해치 팀 공개 입단테스트에 참가하게 했고, 황덕균은 테스트를 통과하며 서울 해치에 입단하게 됐습니다. 서울 해치는 기아 김진우, 한화 손지환 등 프로 출신 선수들이 뛰었던 팀으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황덕균은 서울 해치에 입단하자마자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2011년 4월 17일, 오사카 호크스트림과의 스프링컵 최종전에서 6.1이닝 1자책으로 팀의 4전 전승 우승을 이끌며 대회 MVP에 선정된 것입니다. 대회 4경기에 모두 출장한 황덕균은 2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0.67로 팀의 4승에 모두 기여했습니다. 화려하게 시작한 일본 독립리그 생활이었지만 팀이 해산되며 황덕균은 또 한 번의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됩니다.
원망도 했지만 프로 선수로 데뷔하게 된 NC 시절 (2012-2013년)
▶ 프로 첫 출장의 기회를 얻었던 NC의 황덕균
서울 해치가 해산되며 또 다시 갈 곳을 잃었지만 황덕균 선수는 분명 이전보다 많이 성장해 있었습니다. 곧바로 NC 다이노스의 트라이아웃을 통해 2012년 NC 창단과 함께 입단하게 됩니다. 2012년 퓨처스리그에서 출발한 NC는 통합 우승으로 돌풍을 일으켰고 NC의 마운드에는 황덕균의 이름이 단단하게 새겨졌습니다.
– 2012년 황덕균 성적 (퓨처스/남부리그)
38경기-79이닝 / 10승 3패 1홀드 / ERA 3.30 / 41삼진-22볼넷
한 번의 방출과 한 번의 팀 해체. 그리고 여러 번의 입단 테스트 탈락을 겪었던 황덕균은 절박했습니다. 신생팀 NC에서 첫해 선발과 중간을 가리지 않고 출장한 그는 준수한 성적을 올리며 NC 구단에서 선정한 투수부문 올해의 선수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남부리그 다승(17승)과 평균자책점(1.55) 1위를 차지한 이재학에 밀려 올해의 선수에 뽑히진 못했지만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 2013년 황덕균 성적 (퓨처스/남부리그)
15경기-21.1이닝 / 0승 0패 5홀드 / ERA 5.06 / 9삼진-11볼넷
2012년을 불태운 황덕균은 이듬해인 2013년까지 페이스를 이어가지 못하고 결국 2013 시즌 후 NC 스카우트로 제안을 받게 됩니다. 사실상 선수로서는 은퇴 권유를 받게 된 황덕균은 선수생활에 대한 의지로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고 팀은 그를 방출하게 됩니다. 황덕균은 이 시절을 ‘왜 나한테 기회를 안주지?’ 하고 원망했던 시절로 기억했습니다. 나이도 어렸고 여러 번의 아픔도 겪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2013년 황덕균에게 유일하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프로데뷔 11시즌 만에 처음으로 1군 경기에 출장했다는 점입니다.
2013년 9월 8일. 문학 SK전. 프로 데뷔 첫 1군 등판 경기
– 황덕균 프로 데뷔 첫 1군 경기 출장(2013년 9월 8일)
(vs SK) 0.0이닝 / 3타자 상대 / 1피안타 2실점 / 1볼넷-1사구-1폭투
2002년 두산에 2차 33순위로 입단한 황덕균이 11년 만에 처음으로 1군 경기에 등판했습니다. 3타자를 상대했는데 첫 타자인 정상호에게 볼넷, 다음 타자인 한동민에게 몸 맞는 공을 허용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자인 김성현을 상대해서 폭투로 2명의 주자에게 진루를 허용했고, 이어 김성현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2실점,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정성기 선수와 교체됐습니다. 이를 악물고 던졌지만 11년 만의 데뷔전은 너무나 떨렸고, 많은 것을 보여주기에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마운드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큰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신생팀의페이스 메이커’ 마음가짐을 달리한 KT 시절 (2014-2015년)
▶ 신생팀의 페이스메이커, KT 시절 황덕균
NC에서 방출된 황덕균은 또 다시 신생팀인 KT에서 기회를 얻게 됩니다. NC 시절 ‘왜 나한테 기회를 안주지?’하고 원망했던 황덕균은 훗날 KT 시절을 회상하며 ‘나는 신생팀의 페이스메이커구나’라고 말하며 달라진 마음가짐을 보여줍니다. 수없이 많든 좌절의 시간을 견뎌낸 황덕균은 더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 2014년 황덕균 성적 (퓨처스/북부리그)
24경기-101이닝 / 8승 5패 1세이브 1홀드 / ERA 4.46 / 30삼진-31볼넷
2014 시즌 황덕균은 마이크-박세웅과 함께 KT 마운드를 이끌게 됩니다. 24경기에 출장해 리그에서 3번째로 많은 101이닝을 투구했고 평균자책점 리그 7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립니다. 이듬해 1군 경기를 하는 KT에게 황덕균은 투수진의 한 축이 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 2015년 황덕균 성적 (퓨처스/북부리그)
16경기-38.1이닝 / 3승 1패 1홀드 / ERA 6.10 / 15삼진-11볼넷
KT가 1군에 진입하며 황덕균도 화려하게 비상할 것처럼 보였지만 NC에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시즌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시즌 초반 1군에서 시작했던 황덕균은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단 3경기 불펜 출장 후 퓨처스리그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후 아쉬운 성적을 거두고 2015 시즌 후 KT와의 계약이 불발되고 황덕균 선수는 또 다시 무적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 2015년 황덕균 성적 (1군)
3경기-3.2이닝 / ERA 7.36 / 2삼진-5볼넷
NC 시절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잡지 못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나마 나은 성적이지만 2014 시즌 후 그에게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아쉬운 1군 성적이었습니다. 프로 통산 1군에서 단 4경기에 출장한 것이 전부인 황덕균 선수의 나이는 어느덧 34살. 그에게 수없이 포기를 이야기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황덕균은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덕균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를 지탱해 준 것은 그가 가장 힘들었을 때 ‘이 사람(황덕균) 옆에 있어줘야겠다’고 말하며 그와 결혼한 아내였다.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 첫사랑 이룬 눈물 많은 부부
▶ ‘아내와의 러브스토리는 영화’
황덕균 선수와 아내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만난 첫사랑입니다. 황덕균 선수는 선린인터넷고의 투수였고, 아내는 응원단장 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이었지만 황덕균 선수가 프로에 입단하며 ‘야구 선수와 만나는 것이 힘들었던’ 지금의 아내와 헤어지게 됩니다. 헤어지고도 10년을 연락하며 지낸 두 사람이었는데 황덕균 선수는 ‘이 사람과 무조건 결혼 한다는 예감이 들었다’며 지난 시간을 기억했습니다. 늘 좌절의 시간만 가득했던 황덕균의 야구인생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2011년. 그는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에 탈락했지만, 지금의 아내가 ‘이 사람 옆에 있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가장 힘든 시기에 옆에서 힘이 되어준 것입니다. 그리고 NC 다이노스 소속이던 2012년 퓨처스리그에서 10승을 거둔 그는 바로 결혼해 4살 아들과 2살 딸을 두고 있습니다. 프로에서 1승 하는 것이 꿈이던 황덕균 선수가 1군 경기에서 첫 승을 거둔 날 아내와의 통화에서 울기만하고 아무 말도 못했다던 눈물이 많은 부부. 끝이 보이지 않던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던 두 사람에게 이제는 밝은 빛만 가득하길 바랍니다.
‘1군 경기 1승’. 꿈을 이루게 된 넥센 히어로즈 (2016년~)
▶ 넥센이라 행복합니다
KT와의 계약이 불발된 지난해 말, 그는 거의 야구를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길고 길었던 지난 암흑기에도 놓지 않았던 야구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던 그때, 넥센의 이장석 대표가 그에게 테스트 기회를 줬습니다. 테스트를 통과한 황덕균은 넥센 2군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합니다.
– 2016년 황덕균 성적 (퓨처스/북부리그)
42경기-44.1이닝 / 3승 5패 4세이브 7홀드 / ERA 4.67 / 25삼진-12볼넷
마지막 기회를 부여잡은 황덕균은 2015년 보다 나은 성적을 기록하게 됩니다. 황덕균은 화성 히어로즈에서의 재기를 브랜든 나이트와 최상덕 코치의 공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그는 그가 꿈같다고 말한 1군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 2016년 황덕균 선수 1군 기록
– 6월 3일(vs 기아) : 1이닝 0실점 (21구)
– 9월 15일(vs KT) : 5이닝 0실점 (57구)
– 9월 19일(vs 롯데) : 4이닝 0실점 (46구) *승리 투수
2013년 NC에서 프로 첫 경기에 나섰을 때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했던 황덕균 선수였지만 그는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2015년에는 3경기에 출장하며 3.2이닝을 투구했고, 올해는 10이닝을 완벽하게 막았고, 그가 출장한 3경기에서 팀은 모두 승리했습니다. 황덕균 선수의 프로 생활 목표는 ‘1승’이었습니다. 여느 선수들은 목표로 잡지도 않는 단 1승이었지만 1군에 설 기회를 잡기도 어려웠던 그에게는 절박하고 꿈만 같은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19일, 그는 마침내 그 간절했던 꿈을 이뤄냈습니다.
프로 데뷔 5577일만의 1승. 염경엽 감독의 축하 메시지 ‘늦었다 싶을 때가 시작이다!’
▶ 늦었다 싶을 때가 시작이다!
지난 9월 19일, 롯데와의 사직 원정경기에서 황덕균 선수의 팀의 2번째 투수로 등판했습니다. 팀이 2대0으로 앞선 2회, 선발 김정인에 이어 투구를 시작한 황덕균은 롯데 타선을 4이닝을 1볼넷 무실점 노히트로 완벽하게 막았습니다. 그가 마운드를 지킨 사이 타선은 폭발했고, 결국 이날 경기는 11대1 넥센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이날의 승리투수는 지난 2001년 6월 15일 프로 지명 이후 5577일 만에 1군 경기 첫 승을 기록한 황덕균이었습니다. 자신의 꿈을 이룬 황덕균 선수는 모든 공을 염경엽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에게 돌렸고, 염경엽 감독은 ‘늦었다 싶을 때가 시작이다!’ 는 메시지로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이날의 감동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경기 중계를 맡은 SBS 스포츠에서 운영 중인 ‘진짜야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이날 경기의 마무리 영상입니다. 넥센의 황덕균 선수가 데뷔 15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거두자 황덕균 선수 혼자 그라운드로 내보냅니다. 자신의 꿈을 이룬 선수에게 감격적인 순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인데요, 이날 경기를 중계한 정우영 캐스터는 ‘황덕균이 버텨온 지난 15년의 시간에 박수를 보냅니다’는 말로 축하를 전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황덕균 선수에게 두 손으로 공손히 승리구를 전달하는 염경엽 감독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황덕균 선수가 전달받은 바로 이 공에 ‘늦었다 싶을 때가 시작이다!’는 메시지와 함께 말입니다.
이제 시작인 황덕균 선수의 앞날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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