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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기록/지희네 이야기

아버지 묘지를 이장하며

by j제이디 2018. 5. 12.

 아버지 묘지를 이장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 내게는 그 어떤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고 사진이 없었다면 얼굴도 알아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묘지를 이장하며 세운 묘비를 보니 1991년, 내가 6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6살이면 기억이 날법도 한데 그날의 사고가 어렸던 내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던 것일까, 내 기억도 그날의 사고와 함께 모두 지워졌다. 


 살면서 한 번도 원망해본 적은 없다. 다만 때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내게도 아버지라는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덜 힘들었을까, 불쌍한 우리 엄마 조금은 더 행복했을까 의미 없는 상상을 해보긴 한다. 나에겐 처음부터 없었던 당신이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불현듯 생각이 난다. 깊은 한숨으로는 지워지지가 않고 끝내 눈물로 잊혀지는 당신 생각. 


 그런데 오늘, 내게는 없었던, 상상으로만 만날 수 있었던 아버지를 마주했다. 왜 죽은 지 30년이나 된 사람의 묘지를 이장해야 하는지 나는 물을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답할 수 없었다. 그냥 어른들의 일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나도 이제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들의 일을 다 알기엔 너무 어린가 보다 생각했다. 


 내가 살았던 시골 마을엔 문중 산이 있었다. 대대로 우리 가족의 묘가 있는 산이다. 이 땅의 소유를 묻는 것도,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도 모두 불문율 같은 것이었다. 몇 번의 송사를 거쳐 땅의 소유는 외지인에게로 넘어갔고, 가족들의 묘지도 모두 이장해야만 했다.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가 보다. 


 이장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했다. 묘지를 옮길 곳의 터를 닦는 작업을 한참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나 나무를 뽑고 터를 다지고 드디어 묘지를 이장할 시간이 왔다. 30년간 묻혀 있었던 관을 꺼낼 시간이 온 것이다. 엄마는 무섭냐고 물었고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포크레인으로 몇 번 흙을 파내니 아버지를 품고 있던 관이 드러났다. 그리고 관 뚜껑을 열었다. 그런데 관에 물이 가득하다. 삼촌이 '형님 죄송합니다'하고 말했고 그 말에 나는 그만 눈물이 나고 말았다. 관을 땅 밖으로 꺼낸 후 해체했다. 물이 빠지고 아버지가 보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이렇게 마주하다니 참 얄궂은 운명이다. 살은 모두 없어지고 뼈만 남았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찬찬히 살펴 모든 유골을 수습했다. 또 눈물이 났다. 내가 당신과 마주한 유일한 이 기억은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젊은 사람이 죽어 뼈도 무겁다고 작업자들이 말했다. 그 말이 참 슬펐다. 유골을 화장하려고 옮기는데 삭은 수의가 뼈에 걸려 애를 먹었다. 이제 진짜로 떠난다고 생각했을까 가기 싫어 발길을 붙잡았나 보다. 그 많던 유골이 화장을 하고 나니 그 작은 유골함도 다 못 채운다. 참 부질없는 인생이다.  


 아버지와 막내 삼촌을 포함해 모두 여섯 구의 유골을 한자리에 모셨다. 아버지께 술 한 잔 올렸다. 날이 너무 좋아 더 슬픈 하루였다. 산다는 건 하루하루 죽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아버지 당신이 살아온 시간만큼 어느새 나도 살아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당신이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가혹했던 당신의 운명을 짊어진 채 내가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면 수고했다 위로해주시길. 당신도 고생했소. 이제 편히 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