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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기록/지희네 이야기

덕호 삼촌

by j제이디 2019. 8. 26.

부끄럽지만 덕호 삼촌은 부끄러운 사람이었다.

 

입에 문 담뱃불을 채 끄기도 전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는 멋쩍게 웃는 누레진 이빨이,

종일 이집 저집 논일이고 밭일이고 다 내일이 되어버린 쩍쩍 갈라진 손바닥 시꺼먼 손톱이,

시원하게 한번 말하지 못하고 더듬더듬 맞지 않는 말들만 겨우 내뱉는 말이 부끄러웠다.

 

형님들한테 구박받고 형수들에게 핀잔 듣고 때로 조카들에게도 무시당했던 덕호 삼촌.

그런데 대호 삼촌, 경호 삼촌, 다른 삼촌들에게는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았는데,

덕호 삼촌에게는 왜 늘 이름을 넣어 덕호 삼촌, 덕호 삼촌 불렀을까.

 

아버지 묘지를 이장하던 날 눈치 없이 대낮부터 취해버린 덕호 삼촌은 다짜고짜 묘비석에 날짜가 잘못되었다고 소리 높였다.

양력으로 쓰니까 당연히 이 날이 맞는 거지라며 내가 짜증스럽게 얘기했지만, 덕호 삼촌은 아버지 기일을 양력, 음력 모두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덕호 삼촌의 사촌 형님이었던 우리 아버지 기일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버지를 비롯해 여섯 가족의 기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덕호 삼촌은 낡은 잠바를 입고 구석자리에서 눈치를 보며 서있었지만,

제사상차림이 뭐가 잘못됐는지, 제사 순서가 뭐가 잘못됐는지 늘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럴 때마다 멋쩍었던 다른 가족들이 큰소리치면 뒷머리를 긁적이며 실없이 웃기만 했지만,

돌아보면 부끄럽다 바보 같다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고 바보 같던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한동안 많이 아프셨는데, 미련하게도 아프다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아프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선뜻 가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지만 마땅한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갔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해 드렸는데, 얼굴은 퉁퉁 부었고, 머리는 다 빠져버렸다.

그제야 눈물이 흐른다. 부끄럽고 바보 같은 내 모습에 눈물이 흘렀다.

 

사는 동안 무엇 하나 덕호 삼촌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었는데,

하늘에서는 부디 당신 아버지 만나 사랑했다 위로 받으시길,

내 아버지 만나 고생했다 위로 받으시길.

 

덕호 삼촌, 언젠가 우리 만나면, 다른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올 거 같네요.

미안했어요. 남은 가족들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부디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