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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일상 및 기타

[2012년 10월 31일] 당신을 존경합니다

by j제이디 2013. 10. 11.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뵐때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살아계신 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4,50대 아저씨, 아주머니를 마주할때면, 돌아가신 아버지 살아계신 어머니 생각이 납니다. 청소년, 어린 아이들을 보면, 십년 전 이십년 전 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매일 마주하는 수 많은 사람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전' 할머니는 이랜드복지재단과 동아백화점이 함께하는 사랑의 장바구니를 통해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할머니를 처음 찾아 뵌 것은 한 달 전 이었습니다. 중간에 안부 전화를 드리기는 했지만, 한 달 만에 찾아뵌 저를, 90을 바라보는 고령의 어르신이 단번에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 주십니다. 반달같은 눈으로 타지에서 온 손자를 맞으시듯 손을 꼭 잡고 환영을 해주십니다. 그 모습에서 고향에 계신 우리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전'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도 사고와 질병으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자신을 무식하다고 탓하시는 이 할머니는 어릴때는 오빠와 동생들을 위해 희생했고, 결혼해서는 남편을 위해, 나이 들어서는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을 다바쳐 희생했던 가족들, 남편, 자식들이 이젠 할머니 곁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글도 배우지 못한채 일을 배웠고, 평생을 시장에서 보내며 고생 고생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제 할머니도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 둘을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배우자를 잃은 슬픔과 자식을 잃은 아픔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가 않습니다. 할머니의 먼저 보낸 아픈 손가락, 그 중에 하나가 저의 아버지 입니다.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평생을 억척스럽게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여느 경상도 할머니들처럼 손자놈이라고 사내놈이라는 이유만으로 저를 그렇게 좋아하셨습니다. 학창시절 체육대회 달리기를 하면 저는 늘 꼴지를 하고 제 사촌 여동생은 늘 일등을 했습니다. 그래도 손자놈이라고 잘했다고 내새끼라 아끼던 분이 제 할머니 입니다. 운좋게 시험을 잘보면 우리 할머니는 동네방네 손자 자랑을 그렇게 하셨습니다. 남들 다가는 대학인데 대학 갔다고 경로당엘 가서 다른 할머니들에게 못난 손자 자랑을 며칠씩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할머니 빨간 내복하나 사드렸는데 내 새끼가 사준거 아까워서 못 입는다고 고이고이 싸서 장롱 깊이 넣어두셨습니다. 작년 추석에 장롱을 열어 봤는데, 빛 바랜 포장지속 내복이 아직도 새것 그대로 있었습니다. 6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흐르는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던 할머니가 이제는 겨우 저를 알아보십니다. 가끔 사촌 동생과 헷갈리기도 하시고, 동생 이름을 부르기도 합니다. 방금 밥을 먹고 돌아서서 또 밥을 드시기도 하고, 한참을 멍하니 말없이 앉아 계시기도 하고...그렇게 점점 아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남들은 치매라고 말하기도 하고 노망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전' 할머니를 보며 저의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일을 하며 만나게 되는 많은 어르신들과 많은 사람들. 하지만 정작 내 가족 내 주위 사람들은 잘 챙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더 늦기 전에 조만간 할머니를 찾아뵈야 되겠습니다. 아직도 못난 손자가 세상에서 제일 자랑스럽다는 할머니 만나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