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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일상 및 기타

[2012년 10월 24일] 희망은 없습니다. 당신이 희망이 되어주세요.

by j제이디 2013. 10. 11.

 

 

 

(사진은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없어서 밥 대신 먹이는 죽입니다. 사랑의 장바구니를 하며 고기를 많이 사는 분, 반찬을 많이 사는 분을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죽만 사는 분은 처음이었습니다.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이게 밥이고, 이렇게 먹어야 살아갑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을 응원합니다.)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하얀 얼굴에 큰 눈, 또렷한 이목구비, 이렇게 예쁜 아이가 또 있을까요. 사슴같이 영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볼 때면 황홀하기까지 합니다. 약간 벌린 입으로 나에게 무어라 속삭이려 하는 것일까요. 이 아이의 미소가 오월의 하늘보다 더 눈부십니다.

 그런데 이 예쁜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약간 벌어진 입으로는 이따금씩 신음소리만 겨우 낼 뿐 한참을 귀를 기울여도 말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의 고운 손이 나의 거친 손을 잡지 못합니다.

 한참을 또 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끝내 이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제 손가락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무려 11년을 이 아이는 누워만 있습니다. 두 돌 때 처음, 다른 아이들은 걷기 시작할 때 이 아이는 눕기 시작했고, 한번 걸음마를 배우면 평생 다시 배울 일이 없듯이, 이 아이도 그렇게 지금까지 누워 있습니다.

 열세 살, 너무도 예쁜 여자아이, 그래요 이 아이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큰 딸입니다.

 


 또 한 아이가 있습니다.

 하얀 얼굴에 큰 눈, 또렷한 이목구비, 이렇게 예쁜 아이가 또 있습니다. 사슴같이 영롱한 눈망울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또 한 아이. 이 아이의 미소가 시월의 하늘보다 푸릅니다.

 그런데 이 예쁜 또 한 아이의 눈동자도 흔들립니다. 약간 벌어진 입으로도 역시나 이따금씩 작은 신음소리만 새어나올 뿐입니다. 아이의 고운 손과 팔, 다리는 가끔씩 너무 심하게 떨립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경기라고도 하고 경련이라고도 합니다.

 이 아이에게도 한참을 기다리고 또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그 작고 예쁜 입에서 나오는 건 나를 사랑한다는 그 말이 아니라 기침과 피였습니다. 의사는 폐렴이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도 10년째 누워만 있습니다. 이제 이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냥...그냥 살아있기만 하는 것입니다. 내 희망이었던 이 아이가 내 꿈을 작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이 아이에게는 살아만 있어 주는 것이 그게 그렇게 힘든 일입니다. 의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열두 살, 너무도 사랑스러운 남자 아이. 열세 살 내 예쁜 딸 옆에 누워있는, 그래요 이 아이 내 큰 아들입니다.


 나는 미친년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누워만 있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내가 미친 것 같습니다. 어떨 땐 세상이 미친 것 같고, 또 어떨 땐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습니다.

 한번은, 진짜 한번은 자다가 셋이서 같이 죽는 그런 상상을 합니다. 애들이 나보다 딱 하루만 먼저 죽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먼저 죽으면 안 되니까 셋이서 같이 죽는 상상을 합니다. 생각이라도 그러면 안 되는데, 말도 못하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는 이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자꾸 듭니다.

 소뇌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이 큰 애 두 돌 때 발병했습니다. 골반이 뒤틀리면서 신경장애가 생겼고,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원인도 알 수 없고, 증세도 판단하기 어렵고, 대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꼭 일 년 뒤에 이 병이 동생한테도 나타난 겁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습니다. 서로 니 탓이라고 싸우다 이혼까지 했고, 가족들과는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어떨 때는 혼자서 정말로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자책을 하다 사는 게 너무 우울해졌습니다. 잠이 오질 않아 수면제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 졌습니다.

 그런데 의사들이 오래 못살고 죽을 거라고 했던 아이들이 잘 버텨줍니다. 지금까지도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 잘 버텨주고 있는데, 아이들은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는데 나는 죽을 생각을 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살아야 아이들도 삽니다.

 아이들이 말도 못하고 평생 누워서 제 몸도 못가누고 대소변도 못 가리고 살아야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정신은 멀쩡해서 내 말에 반응을 합니다. 내가 힘들고 짜증을 내면 아이들도 표정이 어두워 지는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내가 기분이 좋아서 농담도 하고 싱글벙글 웃으면 잘 움직이지 않는 근육을 힘겹게 움직이며 나에게 웃어 줍니다. 그래요, 내가 이 아이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살아야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가려니 막막합니다. 평생 누워있어야 하는 아이들 기저귀 값만 한 달에 30만원, 소화를 못시키는 아이들 환자식이 한 달에 30만원, 조금만 아프면 바로 입원해야 하는 아이들 병원비가 한 달에 부지기수로 나옵니다.

 제겐 희망도 용기도 없습니다. 다시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이 현실의 벽에 막혀 이내 쉽게 꺾이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