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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일상 및 기타

[2012년 11월 10일] 아버지라는 그 이름의 무게

by j제이디 2013. 10. 11.

 

 

 

 

 우리집은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나는 국민학교 문턱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국민학교 들어갔을 때, 그러니까 그게 아마 40년도 더 된 얘긴데, 그때 우리집이 너무 가난해서 육성회비를 낼 수가 없었어요. 결국 국민학교를 1학년도 못마치고 그만두게 됐지. 부모를 원망할 여유도, 부끄러움을 느낄 겨를도 없었지요. 그때는 너무 가난했고, 또 너무 어렸으니까요.

 그래도 내가 장남인데 어쩝니까. 집에는 쌀 한톨 나올게 없으니 집을 나가 돈을 벌러 갔지요. 못배운 어린 놈 한테 누가 일을 시켜 줍니까. 어릴 때 부터 허드렛일, 공사장 막노동, 공장 공돌이 노릇 하면서 살았지요.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가 됐고, 일이 없을 때는 여기저기 밥동냥도 다니고 옷은 남들이 버린거 주워다 입고, 거지가 따로 없었지. 아니 내가 거지였어.

 아주 어릴때 부터 공사판을 전전하다가 안동까지 오게 됐어요. 어려서 집을 나와 이십년 넘게를 막노동을 했지요. 그러다가 집사람을 만났어요. 사람이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너무 착한게 그게 문제였어. 여기저기 돈 다 뺏기고 밖으로 나다니기 시작하더니 애들 둘을 나몰라라 하고 집을 나가버렸어. 이혼이고 뭐고 그냥 그렇게 가버렸어. 못배운 무식한 놈이 평생을 몸뚱이 하나로 벌어놓은 돈 다날리고 집안도 풍비박산이 났지. 겨우 남들처럼 사는가 했는데, 다시 길바닥에 나앉게 된거지. 이놈의 팔자가 그런가봐요.

 아들 놈 하나, 딸 하나 있는데, 이놈들이 너무 착해. 아부지라고 빙시같은 나를 만나가지고 불쌍한 놈들인데 어떻게 이렇게 착하게 잘 컸는지,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다가도 이놈들 보면 정신이 버쩍든다니까. 아들놈이 인제 내년에 스무살인데, 글쎄 집안 형편 어렵다고 대학을 안가고 공장에 취업해가지고 돈을 벌어서 집에다가 보태주고 자기는 야간대학을 가겠다는 거야. 딸은 못먹어서 키가 너무 작아서 남들보다 일년 늦게 학교를 들어갔어요. 근데 검사를 해보니까 장애가 있다네. 정신 장애 판정을 받아가지고 그러고 있잖아. 부모라고 있는게 이래 못배우고 못나가지고 새끼들이 고생을 한다니까.

 한 4-5년 전부터 이가 시리도록 아프던걸 참다 참다 치과를 갔는데 생니를 3개나 뽑아야 된다고 해서 뽑았지. 지금까지 그냥 이러고 사는데, 또 아파서 가보니까 4개를 더 뽑아야 된다고 하네. 이가 없어서 밥도 물에 말아서 겨우 삼키고 반찬은 생각도 못하고 그러고 살지. 어려서부터 고생을 너무 해가지고 몸이 만신창이 안아픈데가 없고, 이제 나이 50인데 골병이 들어서 아무 것도 못합니다. 죽지 못해 사는걸 누가 시청에 얘기를 해줘갖고 공공근로라고 동네 청소하면서 한달에 한 오십만원 받고, 수급자라고 한 사십만원 받아가지고 그래 삽니다. 못 배운 놈이라고 못난 놈이라고 어디 자식 새끼들한테 남들처럼 잘 안해주고 싶겠습니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용돈도 챙겨주고 그라고 싶은데 내가 돈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저 불쌍한 것들 생각하면 내가 죽어도 미안한 마음을 갚을 길이 없는데, 그래도 저것들 보면 내가 악착같이 살아서 돈벌어서 뭐라도 해줘야 안되겠습니까.

 내 인생이 참 그렇지요? 그래도 내가 보호잔데, 아버지라고 있는 사람이 죽기 살기로 내 자식들인데 끝까지 책임 져야지요. 남들이 나한테 바보다, 등신이다, 왜 저렇게 사나, 살아서 뭐하나 이딴 소리들을 합니다. 나도 알아요. 그란데 어짭니까. 아직 저 어린 놈들이 있는데, 그래도 내가 열심히 살아서 이놈들 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야 안되겠습니까.

 내가 내 새끼들 아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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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만난 한 아버지. 그게 운명이든, 팔자든, 하늘의 뜻이든, 그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남들처럼 못살고 힘들고 가난하고 아픔이 많지만, 그래도 그는 열심히 살아가는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아버지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웠습니다.

당신을 통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