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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일상 및 기타

할머니와 운동회

by j제이디 2014. 5. 10.

할머니와 운동회
 

 

 


초등학교 때 어버이날이 되면 마을 대항으로 운동회를 했다.
어릴 땐 더 뚱뚱하고 둔했던 나는 운동회가 너무도 싫었지만
운 좋게도 우리 마을은 늘 1,2등을 다투는 운동 잘하는 마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 개인 달리기가 늘 문제였다.
 
운동회의 꽃은 계주와 줄다리기였지만 운동회의 시작은 개인 달리기였다.
아프다고 거짓말도 해보고 화장실에 숨어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네 명씩 달리는 이 시합엔 왜 나만 빼고 다 잘 달리는 아이들일까 생각하지만
실상은 어느 조에 들어가서 달려도 어차피 늘 꼴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달리기는 고작 50여 미터에 불과했던 것 같다.
물론 승부는 초반 10미터에 이미 그들만의 경쟁이 되었지만 말이다.
1등은 공책 3권, 2등은 2권, 3등은 1권을 받았고 나는 늘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단순히 꼴찌라서 혹은 공책을 받지 못해서 부끄러웠던 게 아니었다.
 
남아선호사상이 투철하셨던 할머니는 나를 유독 예뻐하셨던 것 같다.
어쩌면 먼저 하늘나라로 간 불효막심한 아들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픈 손가락이었던 아들 몫까지 손자에게 사랑을 돌려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늘 오빠에게 밀렸던, 같은 학년의 생일 늦은 사촌 동생이 있었다.
 
하지만 달리기에선 이야기가 달랐다. 그것도 아주 많이.
본부석 쪽에 달리기의 골인점이 있었고 할머니는 그곳에 앉아 계셨다.
동생은 아주 쉽게 일등을 했고 나도 아주 쉽게 꼴찌를 했다.
할머니에겐 일등도 꼴찌도 모두 귀여운 손주였겠지만 그땐 참 많이 부끄러웠다.

 

할머니를 떠올리면 늘 운동회가 생각나고 운동회하면 늘 할머니가 생각난다.
할머니에게 한번만이라도 선물을 자랑하고 싶었던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늘 밝은 미소로 손주를 감싸 안아주던 큰 나무 같았다.
엄마한테 혼날 일이 있으면 할머니 뒤에 숨었고 할머니는 언제나 내편 이었다.

 

군대 가기 전 대학시절 과외를 하며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속옷가게에 들러 사이즈도 모르는 할머니 내복을 샀다.
할머니는 내새끼 이제는 다 컸다며 눈물까지 보이시며 참 기뻐하셨고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까지도 그 내복은 포장 그래도 고이 모셔져 있었다.

 

결국 나는 달리기로 한 번도 할머니에게 공책 자랑을 하지 못했고
할머니는 한 번도 내가 산 내복을 입지 않고 아껴두셨다.
그리고 지금 할머니는 많이 아프다. 참 많이 야위고 약해졌다.
분명히 내가 업혔을 허리는 너무 말랐고, 잡아주던 손엔 힘이 없다.

 

너무나 크게 보였던 운동장은 어느새 실망스러우리만큼 작아졌고
너무나 넓었던 할머니의 품은 볼품없이 작아졌다.
몇 년 사이 몰라보게 기력이 약해진 할머니는 지금은 누워만 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안다.

 

오랜만에 할머니를 찾았다. 이젠 누워있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난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면서도 손주 이름을 부르며 손을 꼭 잡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할머니는 여전히 날 꼭 안아주고 계신거다.
간다는 말에 힘없는 팔을 들어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신다. 눈물이 난다.

 

어깨를 좀 주물러 보라는 할머니의 말을 어린 맘에 불평하기도 했다.
내복을 고르며 돈이 아까워서 조금 싼 것을 고르기도 했었다.
때로 할머니가 부끄럽기도 했고 가끔은 안쓰럽기도 했다.
받은 사랑은 한없이 크기만 하고 해드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은 점점 잊혀져 가고
지금의 작고 약해진 할머니만 기억할까봐 두려워진다.
이젠 조금은 더 빨리 달릴 수 있고 조금 더 좋은 것 드릴 수 있는데
세월이 아쉽고 작아진 할머니가 안쓰럽고 그저 난 눈물만 흐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