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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 : 글상자/일상 및 기타

[참 좋은 시절] 2014.10.19.

by j제이디 2014. 10. 19.

나이 80.

 

여전히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어르신.

마른 논 같이 갈라지고 딱딱해진 손과

더 이상 펴지 못하는 아프기만 한 허리.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릴 땐 구박받고

결혼해선 남편에게 무시당하고

다 키워 놓은 아이들에게 치인

한 많은 나이 80.

 

이젠 돌보는 이 하나 없고

푸념을 들어줄 말동무 하나 없는

외딴 시골 마을의 늙어버린 노인

아쉬움도 미련도 아닌 후회만 남은 인생.

 

아픈 몸을 이끌고 차를 얻어 타고

오랜만에 집 밖으로, 한참 만에 읍내로

처음으로 복지관을 찾은 한 어르신,

어르신에게서 일의 의미를 배웁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재단의 미션이

봉화의 빛과 소금이 되겠다는 복지관의 사명이

그저 공허한 외침이 아님을

이 어르신에게서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여기 와보니 참 좋네요. 왜 이제껏 몰랐을까.

이렇게 좋은 것도 주시고 참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시설에 친절한 직원들에 감사하다고 하시며

전달 드린 보행보조기에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참 좋은 시절을 만났는데, 나는 너무 늙어버렸고

몸은 너무 아프고, 죽기엔 너무 아까운 세월이네.”

넋두리처럼 반복하는 어르신의 혼잣말에

괜히 붉어진 눈시울을 감춰봅니다.

 

이제 다시 건강해지셔서 자주 놀러 오시라는 말에

꼭 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연신 고맙다는 어르신

손주 생각이 나셨던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나이만큼이나 깊게 패인 어르신의 눈가도 촉촉해집니다.

 

우리는 보행보조기 하나를 전달 드렸을 뿐인데

어르신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그 감동이 우리 일의 가치입니다.

어르신에게 가치와 감동을 전하는 것입니다.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더 많은 어르신을 돕기 위해서는

더 적게 나눠드리든지 자원을 늘리든지 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어르신께 돌아가도록 준비하는 과정에서

직접 확인하고 또 고민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자원을 발굴하고 대상을 선정했다고 끝은 아닙니다.

진짜 감동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좌우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은 것을 어렵게 준비했다 하더라도

전하는 과정에서 감동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가치 있게 준비하고 감동 있게 전달한 보행보조기가

어르신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미 어르신은 이 과정에서 삶을 돌아보며

또 삶을 내다보며 감동을 느끼셨으니까요.

 

참 좋은 시절입니다.

어르신뿐만 아니라 우리게도 참 좋은 시절입니다.

이 좋은 시절을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게 우리 일의 참 좋은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