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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의 기록/오늘의 노래

정태춘 - 92년 장마, 종로에서

by j제이디 2017. 8. 2.

* 이 글은 2016년 11월 14일 홈페이지에 쓴 글을 옮긴 것입니다. 


 지난 12일, 가수 정태춘이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문화제 무대에 올라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를 읽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가 부른 노래는 1992년 발매한 정태춘&박은옥의 8집 앨범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타이틀곡이었던 <92년 장마, 종로에서> 였습니다. 그는 노래의 전주와 간주에 그가 지금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전주] 내가 살고있는 나라는 선이 악을 물리치고 염치가 파렴치를 이길 수 있는 나라여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언제나 조롱당해 왔습니다. 거짓은 진실 앞에 고개 숙이고, 많이 가진 자들은 못 가진 자들에게 미안해 해야 하지만, 그러나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는 민의가 헌법보다 우선하고 시민의 분노가 정치적 계산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언제나 좌절당해 왔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나라.


 [간주] 지금 우린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 분노는 우리의 염치와 정의감 자존심으로부터 나옵니다. 다시는 조롱당하지도 좌절당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끝까지. 여기 내가 살고있는 나라 이름이 무엇이든.


가수이자 시인, 사회운동가인 정태춘의 시와 노래가 이날 참여한 100만 시민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 정태춘 – 92년 장마, 종로에서 (문화제 Ver.)

[작사: 정태춘, 작곡: 정태춘]


▶ 정태춘 – 92년 장마, 종로에서 (원곡)

[작사: 정태춘, 작곡: 정태춘]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가는구나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훨

훨 훨 훨


빨간 신호등에 멈춰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훨



[92년 장마, 종로에서] 앨범 자켓(왼쪽), 집회에 참석한 정태춘과 손녀딸(오른쪽). (출처: 정새난슬 페이스북)



 정태춘&박은옥 8집 [92년 장마, 종로에서]는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63위에 오른 고전입니다. 우승연 네이버 대중문화 팀장은 이 음반을 두고 ‘1992년 대한민국의 풍경을 음악적 리얼리즘으로 정밀하게 그려낸 앨범이다. 음유시인에서 현장시인이 됐던 그들이 투쟁의 거리가 사라진 90년대에도 음악의 사회적 기능이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라며 평했습니다.


 ‘시대는 사는 가수’ 정태춘의 노래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그가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고 한지 25년이 다 되가는 2016년입니다. 여전히 시대를 사는 가수라서,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