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희에게 직장의 의미는 남달랐다. 첫 직장이자 7년을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켰던 지희에게 마포의 의미는 정말 남달랐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은 지희를 너무 일찍 철들게 했고, 대학생활의 낭만 따위는 한번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이 살았다. 이것저것 안해본 적이 없었던 아르바이트는 용돈벌이라기 보다는 살기위한 발버둥에 가까웠을 것이다. 그렇게 숨쉴 틈조차 잠깐 쉬어갈 여유조차 없었던 지희가 막연하게 맞게 된 졸업, 그땐 정말 더 막막했을 것이다. 어렸지만 어린 티 낼 수 없었던 스물 넷 그때 처음 계약직으로 직장을 갖게 된 것이 지금의 마포다.
지희가 어느덧 4년차 사회복지사였던 그때, 나는 미래에 대한 아무 진지한 고민이 없는 대학생이었다. 용돈벌이를 위해 근로학생을 하며 학교를 빈둥거리던 어느 겨울 방학, 낮잠을 자느라 받지 못했던 한 교수님의 전화로 나는 아무 어려움 없이 인턴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인턴 생활이 끝날 땐 수많은 곳에서 오라는 손길을 뿌리치고 부산으로 향했다. 부산에서의 1년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서울로, 봉화에서 다시 서울로 그렇게 나는 나를 찾는 많은 곳 중에서 내가 선택해서 직장을 가졌다.
이렇게 너무나 다른 직장 생활을 했던 우리에게 지난 몇 주 간은 너무나 많은 고민들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발령을 통보받은 지희와 옆에서 힘든 시간을 지켜보는 나에게 시간은 아무런 약이 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도 처음 마음에 든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지희의 의견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고 복종만을 강요하는 회사를 향한 나의 분노와 배신감은 커져만 갔다. "7년간 헌신한 회사가 개인의 의견은 전혀 들은 척도 안하는데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 그만둬라."고 나는 말을 했다. 날선 말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제야 지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까이에 있는데도 마음을 헤아리긴 쉽지가 않다)
지희는 왜 그렇게 많이 울고 아파했을까. 아무런 동의 없이 갑작스럽게 발령이 나게 된 것, 용기내 말한 작은 목소리를 묵살한 것은 모두 뒤로하고도 무엇이 지희를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그제야 지희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의 분노가 나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내 눈을 가리고 내 귀를 막았다. 비로소 지희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 날,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 까짓것 그만두라고 쉽게 말해버렸던 내 말이 너무 미안했다.
월요일 아침, 새로 발령받은 중랑으로 함께 출근했다. 내가 한 달 정도 잠깐 일했던 곳이기에 초행길인 지희를 바래다주러 함께 길을 나섰다. 나에게는 오랜만에 찾아도 익숙한 곳이었지만 7년을 한곳에만 출근하던 지희에게는 얼마나 어색하고 떨리는 아침이었을까. 남편이랍시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지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던 내 모습이 너무 미안하고 초라해 보였다. 지희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면서 간사하고 나약한 내 마음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오늘도 출근하는 지희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 말을 들어주는 것 뿐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한 내 미안함을 대신해 이 작은 공로상을 전한다. 지난 7년을 한결같이 출근했던 지희에게 고마움을, 오늘도 출근하는 지희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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