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7일만에 누적 관객수 54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개봉 7일만에 500만 돌파는 물론 손익분기점 마저 넘기면서 현재까지 올해 가장 주목받는 영화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평이 좋아 입소문을 타고 있는데다 뜬금없이 전두환 측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이 "5.18은 폭동인 게 분명하다", "시민을 겨냥해 사격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영화를 아직 못 봤지만, 정도가 지나치다고 한다면 법적 검토도 가능하다"며 영화 [택시운전사]에 대립각을 세웠고, '전두환 회고록'의 출판 및 배포를 금지한 법원의 결정에 불복하며 오히려 영화의 흥행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평일에도 50만 관객을 동원중인 추세를 볼때, 주말과 다음주 광복절을 거치며 1천만 관객 돌파는 무난해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주연배우 송강호 만큼이나 주목받고 있는 배우가 있습니다. 영화 후반 아주 짧은 등장이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박중사'역의 배우 엄태구가 그 주인공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극중 송강호의 배역인 '김만섭'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해도 잠깐 나온 '박중사'는 모두 기억할 정도입니다. 배우 엄태구는 큰 키에 허스키한 음색, 명암이 분명한 얼굴에서 위압감이 느껴질 뿐 아니라 송강호가 극찬한 대로 강력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 송강호는 엄태구를 칭찬하며 "엄태구가 주인공 같았다. 엄태구가 나오는 장명이 이 영화의 궁극적인 지향점을 얘기하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중요한 장면이다"고 했습니다. (▷[스포주의] 택시운전사 비하인드 스토리 15 참고)
배우 엄태구는 1983년생으로 올해 나이가 35살입니다. 대부분의 관객들이 기억하는 엄태구는 영화 [밀정]의 '하시모토'가 처음이고 [택시운전사]의 '박중사'가 두번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영화 [택시운전사]가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37번째 영화일 정도로 많은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물론 단역이나 조연으로 출연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길고 화려한 필모를 자랑하는 엄태구의 영화들을 살펴보겠습니다.
▶ 반전에 반전, 엄태구의 외모와 성격
강인한 인상과 달리 엄태구는 소심하고 목소리가 작고 과묵한 성격을 지녔습니다. 어렸을때는 너무 소심해서 초등학교때 어머니가 웅변학원에 보냈으나 울면서 웅변을 못하겠다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교회에서 우연히 성극을 하게된 것이 연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는 '얼짱' 출신 친구가 '진지하게 연기학원에 다녀보자'는 말을 했고 처음에는 엄두가 안났지만 '한 번 해보기나 하자'는 마음으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결국 건국대 영화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전공하고 연기를 업으로 삼았지만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작은 목소리는 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나는 왜 저렇게 편하게 못 놀지?' 하는 답답함이 늘 있었다고 하는 엄태구는 목소리가 작은 것이 정말 큰 콤플렉스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유일한 장점이라고 말한 '성실함'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했습니다. 10년의 연기 내공이 쌓이자 이제야 연기자 엄태구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 38편의 영화, 그리고 대종상
엄태구는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지만 사실 2년 전인 2005년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아주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공식 데뷔작인 [기담]을 포함해 [악마를 보았다], [옥희의 영화], [베테랑] 등 13편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밀정], [택시운전사],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11편에 조연으로 출연, [잉투기], [차이나타운] 등 13편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특별출연한 [공정사회] 까지 총 37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과는 달리 주연작이 많은 것은 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영화와 단편영화에 많이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엄태구는 단편영화에 많이 출연하는 이유를 '고향에 가는 느낌이 있다. 소수 인원이 의기투합해서 같이 장비 들도 다니면서 찍고, 땀 분장도 혼자 물 뿌리면서 하고, 그런 열정을 추억해본다는 게 즐거운 일이다'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출연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 연도별 출연 작품 (주연작)
- 2005년 : 친절한 금자씨
- 2007년 : 기담
- 2008년 : 유랑시대 / 나는 행복합니다
- 2009년 : 인사동 스캔들 / 시크릿 / 구세주2 / 무료항공권
- 2010년 : 방자전 / 악마를 보았다 / 심야의 FM / 옥희의 영화 / 밤을 위한 춤
- 2011년 : 오싹한 연애 / 특수본 / 하트바이브레이터 / 촌철살인 / 유숙자 / Keep Quiet
- 2012년 : 가시 / 맹수는 나의 것 / 무서운 이야기 / 숲
- 2013년 : 공정사회 / 은밀하게 위대하게 / 동창생 / 잉투기 / 미생 프리퀄
- 2014년 : 인간중독
- 2015년 : 살인캠프 / 차이나타운 / 소수의견 / 베테랑
- 2016년 : 밀정 / 가려진 시간
- 2017년 : 택시운전사
엄태구는 2016년 영화 [밀정]으로 제53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 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비록 영화 촬영으로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믿고 기다려준 김지운 감독님과 현장에서 챙겨주고 귀감이 되주셨던 송강호 선배님에게 감사한다"며 소감을 전했습니다. 엄태구가 연기를 통해 상을 받은 것은 이때가 두번째 였습니다. 첫번째는 2012년 영화 [숲]으로 제13회 대구단편영화제 연기상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 두 상이 현재까지 그의 연기 인생에서 유이한 수상이었습니다.
▶ 엄태구의 형 엄태화
배우 엄태구의 형 엄태화는 영화감독입니다. 현재까지 총 19편의 영화에 연출, 조연출, 각본, 작사, 스토리보드, 동시녹음, 단역, 사운드믹싱, 프로듀서 등 다양하게 참여했습니다. 2003년 다큐멘터리 단편영화 [선희야 노올자]를 연출하며 데뷔한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인 [쓰리, 몬스터]와 [친절한 금자씨]에 조연출로 참여하며 사제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후 계속해서 단편영화를 연출하던 엄감독은 2011년 영화 [촌철살인]으로 첫 장편 감독작을 내놓았습니다. 2013년에는 찌질한 잉여들의 분투기를 다룬 [잉투기]로 영화인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킵니다. 가장 최근작은 지난해 개봉한 강동원 주연의 영화 [가려진 시간]입니다. 엄감독은 이 영화로 제6회 마리끌레르 영화제 특별상, 제35회 브뤼셀 판타스틱 영화제 특별 언급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류승완 - 류승범을 잇는 형제 감독 -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한 형제는 총 8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연출부와 단역, [기담]에서도 연출부와 단역, [하트바이브레이터]에서 감독과 주연, [유숙자]에서 감독과 주연, [촌철살인]에서 감독/각본과 주연, [숲]에서 감독/각본과 주연, [잉투기]에서 감독/각본과 주연, [가려진 시간]에서 감독/각본과 조연으로 호흡을 맞췄습니다.
이 중에서 두 형제에게 잊을 수 없는 영광을 안겨준 작품은 [숲]으로 이 작품을 통해 형 엄태구는 제13회 대구단편영화에 우수상을, 동생 엄태구는 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형인 엄태화에게 전화해 '태구가 집에서 말을 안해'라고 할 정도로 과묵했던 엄태구 였지만 이제는 한국 영화에 빼놓을 수 없는 씬 스틸러 배우로 성장했습니다.
한편, 형 엄태화가 감독을 맡고 동생 엄태구가 주연을 맡은 영화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엄태구의 극중 배역이 모두 '태식' 이었다는 점입니다. [숲], [잉투기], [가려진 시간]에서 엄태구는 모두 '태식' 역할을 맡았는데, 아마도 어릴 때 형이 동생을 태식으로 부르며 놀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됩니다. (영화 [하트바이브레이터]에서는 본명과 같은 '태구'로 등장합니다.)
▶ 김지운, 송강호, 류혜영
배우 엄태구의 연관검색어를 찾아보면 형인 엄태화 감독을 제외하면 김지운 감독, 배우 송강호, 류혜영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중 엄태구가 김지운 감독, 송강호 배우와 함께한 영화가 [밀정]입니다. 엄태구는 자신의 연기인생이 [밀정] 출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두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합니다. 우선, 김지운 감독과는 [밀정]이 첫 작품은 아닙니다. 엄태구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에 단역인 '형사 4'로 출연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엄태구는 이때를 회상하며, '이전까지는 감독들이 자신을 배역으로 불렀는데 처음으로 김지운 감독이 '태구야'하고 불러줘서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6년만에 다시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엄태구에게 김감독은 '송강호에게 끌리지 않는 힘이 있는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엄태구와 송강호의 인연은 2005년 [친절한 금자씨]에서 시작됩니다. 엄태구는 단역으로, 송강호는 특별출연으로 영화에 등장합니다. 이후 2016년 [밀정] 2017년 [택시운전사]에 함께 출연했는데, 특히 [택시운전사]는 송강호가 장훈 감독에게 엄태구를 추천하기까지 했습니다. 송강호는 두 영화에서 모두 엄태구에게 '에너지가 대단한 배우'라고 칭찬했는데 김지운 감독이 '송강호에게 끌리지 않는 힘이 있는 배우'라고 칭찬한 것과 맞닿아 있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에 엄태구는 '송강호와의 만남 전후로 자신의 연기 인생이 나뉜다'고 말할 정도로 송강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내며 화답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유명해진 배우 류혜영은 사실 여러 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자신의 입지를 쌓아왔습니다. 그 중 엄태화 감독의 영화이자 엄태구의 주연작인 [하트바이브레이터], [숲], [잉투기]에 주연으로 출연했습니다. 통통튀는 개성있는 연기로 크게 주목받은 류혜영은 특히 영화 [잉투기]로 제15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동안 많은 작품을 통해 연기를 갈고 닦은 배우 엄태구는 이제야 작품에서 빛을 내고 있습니다. 모두가 극찬하는 강렬한 마스크와 에너지로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서 계속해서 좋은 연기를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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